국민건강보험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도록 한 법안이 올해를 끝으로 자동 폐지된다. 여야가 힘겨루기만 하다가 민생법안 논의를 끝내 결론 내리지 못한 탓이다. 국고지원이 이대로 종료된다면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지속할 수 있는 규정이 31일을 끝으로 종료된다. 국회는 지난 28일 본회의를 열었지만 여야 합의가 불발돼 결국 일몰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건보 재정이 당장 내년에 적자로 전환될 전망인 만큼 국고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건보 재정수지가 내년 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한 뒤 2028년에는 적자 규모가 8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지원금이 끊길 경우 구멍 난 적자는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모두 메워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에 따르면 정부 지원이 끊기면 가입자 보험료는 매년 17.6%씩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월 평균 보험료로 환산하면 2만원 이상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건보에 대한 국고지원이 계속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했다. 다만 정부와 여당은 건보 국고지원 일몰제를 5년 연장하자고 주장했고, 야당은 일몰제를 폐지해 정부 지원을 항구화하자며 맞섰다. 결국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법안 효력이 사라질 전망이다.
여당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이미 건보 국고지원 관련 예산이 편성돼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2023년 정부 예산안상 건보 재정에 대한 내년 국고지원금은 10조9702억4700만원이 편성됐다.
복지위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지난 28일 “이미 정부 예산이 편성돼 있기 때문에 약간의 여유가 있을 것 같다”면서 “국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심사를 해서 국민들에 어려움이 없도록 신년에 계속 법안 심사를 통해 합의 처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산 집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남아있어 건보료 인상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보재정이 파탄 났다고 겁주면서 보장성 강화방안을 중단·축소시키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정작 건보재정 안정에 반드시 필요한 국고지원은 중단하려고 일몰규정 폐지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너무도 이율배반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윤 정부가 주장하는 건강보험 제도개선은 건보재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면서 “정부와 여당이 일몰규정 폐지를 위한 법안 논의에 적극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쿠키뉴스에 “다행히 내년도엔 정부가 이미 재정 지원을 해놓은 상태라 재정을 집행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면서도 “신년에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입법을 해야 한다. 어차피 국고지원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를 일몰 방식으로 하는 게 맞나. 아예 일몰을 폐지하고 국가가 건보 재정을 지원하는 근거를 확실하게 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관계자는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바람에 연장안이든 항구적 법제화든 정리가 안 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다”며 “기간 안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담보하기 위해선 일몰제를 폐지하고 항구적 법제화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데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