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덴’ 정선아 “틀린 선택은 없어” [쿠키인터뷰]

‘이프덴’ 정선아 “틀린 선택은 없어”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1-13 09:00:02
뮤지컬배우 정선아. 팜트리아일랜드

뮤지컬 외길 인생을 살던 배우 정선아는 2년 전 결혼할 결심을 했다. 비혼으로 화려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뒤엎은 선택이었다. 이듬해엔 임신해 엄마가 됐다. 20년간 매일 같이 올랐던 무대를 1년 넘게 떠나있으면서 그는 ‘만약’이란 생각을 수도 없이 떠올렸다. 만약 사람들이 날 잊었다면, 만약 내가 예전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면, 만약 노래가 예전만큼 나오지 않는다면, 만약, 만약에….

그가 복귀작으로 뮤지컬 ‘이프덴’을 택한 건 그래서 필연처럼 보인다. ‘이프덴’은 이혼 후 뉴욕으로 돌아온 엘리자베스가 숱한 선택에 따라 베스와 리즈, 두 갈래로 나뉜 삶을 사는 이야기. 지난 9일 서울 통의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선아는 “임신과 출산을 겪은 내게 ‘이프덴’이 운명처럼 찾아왔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어요. 인간 정선아로 캐릭터에 이입해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극 중 경력에 집중한 베스와 가정을 꾸린 리즈의 삶을 정선아는 모두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그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경주마처럼 달렸다. 뮤지컬 ‘아이다’, ‘위키드’, ‘모차르트!’, ‘웃는 남자’ 등 굵직한 작품을 섭렵한, 베스의 삶이었다. 2019년 중국에서 유학하다 만난 연인과 이듬해 결혼하면서 그는 리즈의 삶으로 접어들었다. “결혼하면 내 행복이 다 무너질 것 같아” 비혼을 결심했던 때는 상상도 못 한 순간이었다.

정선아는 “임신과 출산 이후 내린 가장 좋은 선택은 ‘이프덴’에 출연하기로 한 일”이라고 했다. 분량이 워낙 많아 “화장실도 못 갈 만큼 늘 긴장”하고, 고음역 노래를 대사 뱉듯 불러야 해서 “울면서 연습”했을 정도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들 박수 소리를 들으면 황송한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화려한 의상과 가발로 몸을 치장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내던 디바는 한층 겸허해졌다. 그는 “관객들이 주시는 사랑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더 사랑받는 느낌”이라며 “내 새로운 인생에 손뼉 쳐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고 황송하다”고 했다.

뮤지컬 ‘이프덴’ 속 정선아. 쇼노트

‘이프덴’은 삶을 무턱대고 긍정하지 않는다. 사랑을 택한 리즈는 거대한 절망을 맞닥뜨린다. 일을 택한 베스는 삶이 권태롭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 정선아는 “내 선택에 따라 지름길을 만날 수도, 빙 둘러 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길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어떤 선택이든 모두 나의 선택이고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메시지가 좋았다”고 말했다. 어떤 선택이든 그것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이프덴’은 말한다. 슬픔과 권태에 무릎 꿇지 않는 리즈와 베스를 통해서다.

정선아도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믿는다. 그는 “내가 후회하지 않으면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말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미련 갖지도 말자. 어떤 실망과 좌절에도 굴복하지 말고 내 길을 걸어가자. 그런 ‘이프덴’의 메시지가 좋았어요. 무수한 선택이 우리 삶을 만들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에 애착이 커지더라고요.” 데뷔 때부터 천재로 불린 배우는 자기관리에도 열정을 불태운다.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미디어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로 출강하면서 보컬 트레이너에게 꾸준히 수업도 받는다. “창법이나 발성도 유행을 타니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고 뮤지컬과 사랑에 빠진 소녀는 무대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주·조연은 물론 앙상블 배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며 2021년부터 자선 콘서트도 열고 있다. 정선아는 “뮤지컬 인생 1막이 앞만 보고 달린 시간이라면, 복귀와 함께 시작한 2막에선 주변 모두를 아우르고 싶다”면서 “어릴 땐 ‘인생은 한방! 짧고 굵게!’라며 열정을 불태웠다. 뮤지컬을 향한 풋내기 같은 사랑이었다. 지금은 좀 더 진국이 됐다. 묵묵하게 오랫동안 관객을 만나고 싶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내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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