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구성원들이 의료원 신축이전 예산 축소에 반발하고 나섰다.
17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국립중앙의료원지부는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향해 “기획재정부의 총사업비 축소 결정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국립중앙의료원과 복지부는 2021년 6월 본원 8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총 1050병상을 운영에 필요한 신축이전 사업 예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보다 축소된 총사업비를 국립중앙의료원에 통보했다. 기획재정부가 결정한 규모는 본원 526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으로 총 760병상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기획재정부의 이런 결정이 앞서 2021년 성사된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9·2노정합의’를 번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노정합의에서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신축을 통해 상급종합병원 규모로의 확충 등을 포함한 임상역량을 제고하고, 각종 국가중앙센터 설치 및 운영 등을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발언에 나선 장원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 근거해 제대로 된 국립중앙의료원의 역할 수행이 절실했고, 메르스와 코로나19를 겪으며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의 필요성 또한 절실했다”면서 “2003년 시작된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사업이 20여년 만에 드디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는데, 기재부의 예산 축소와 사업 축소 결정에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장 수석부위원장은 “올해로 65년 된 오래된 시설과 건물, 그리고 급조된 가건물들. 국가 감염병 컨트롤 타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열악한 게 현실”이라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의료진에게 진정한 보답은 국립중앙의료원이 상급종합병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규모로 신축하여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공공의료의 백년대계를 망치려 드는 윤석열 정부의 국립중앙의료원 신축 이전 규모 축소 결정을 규탄한다”며 “방산동 신축 이전이 확정되면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국가중앙병원을 세우고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큰 발을 내딛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또다시 각자도생에 맡기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장은 “우리는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그리고 2019년 코로나를 모두 겪었다“며 “감염병이 돌 때마다 정부는 늘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고,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제대로 만들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이번에도 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니 기재부는 예산이 아까워 축소 계획을 내놓고 있다”며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 감염병 사태에서 과연 누가 발벗고 나설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안수경 국립중앙의료원지부장은 “기재부는 신축이전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총 사업비를 삭감하면서 수도권의 인구 감소와 병상 포화가 그 이유라고 한다”며 “OECD 기준 대한민국의 병상은 차고도 넘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감염병 시국에는 입원조차 어려워 요양병에서 치료받는 환자와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0년 코로나19 발생 때와 2023년 지금의 우리 의료 현장은 무엇이 나아졌나”라고 반문했다.
안 지부장은 “기재부가 과잉 병상이라고 말하고, 의료자원도 집중된 서울에서조차 필수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개입해 공공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공공의료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공공병원을 육성하고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국립중앙의료원이 제대로 된 진료 역량과 자생력을 갖출 기회를 없애버린다면, 우리 전 조합원은 이를 공공의료 중추기관을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안형진 홈리스 행동 상임활동가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상급종합병원 규모 확충 투쟁이 곧 시민의 건강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공공의료 강화 투쟁임을 강조했다.
안 활동가는 “코로나19 시기, 공공병원에서 일반 환자 다 내보내고 코로나19 환자만 받는다고 해서 이제 막 수술을 끝낸 홈리스 환자가 거리로 다시 내몰린 적이 있었고, 응급 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아예 없었던 때도 있었다”면서 “몇 안 되는 국공립병원에 의료의 공적 책무 전부를 전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염병 시기에 취약계층 환자들이 병원 이용에 무리가 없도록 공공병원들을 질적으로 양적으로 확충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재부는 기계적인 술법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의 신축 이전을 축소하며 수많은 시민과 취약계층의 바람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도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기획재정부에서 통보한 신축·이전 사업 규모로는 국립중앙의료원이 부여받은 필수중증의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전날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수렴해 98%의 찬성으로 기재부 결정을 불수용하기로 공식 입장을 정했다.
협의회는 “감염병 위기와 재난 상황 시에 필수의료 및 의료안전망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필수의료의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임상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지방의료격차를 해소하는 중심기관으로써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1000병상 이상(본원 800병상)의 규모가 필요하다”며 “(기재부가 예산 축소 결정 과정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신축 이전 논의가 20년 넘게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대로 된 투자도 없었던 것과,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입원해 있는 기존 환자들을 억지로 내보내 가며 감염병 대응을 하게 한 요인을 고려했는지 궁금하다”고 날을 세웠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1958년 ‘중앙의료원’으로 문을 연 이래 서울 중구 을지로6가 현재 장소를 지켜왔다. 건물이 노후하고 인력과 시설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지속되면서 1990년대부터 신축 이전 계획이 논의됐다. 이후 2003년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료 확충의 일환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서초구 원지동으로 신축 이전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하지만 원지동 부지는 소음 기준 미충족, 문화재 조사 등의 사정으로 불발됐다. 신축이전 부지는 지난해 7월 국방부가 소유한 중구 방산동 일대 미군공병단 부지로 최종 확정됐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