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폭행이나 협박이 없을지라도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에 대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추진하다 법무부 제동으로 사실상 없던 일이 되자 여성계가 반발하고 있다.
앞서 여가부는 26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법무부와 협의해 형법상 정해진 강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내용의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자를 맞춰야할 법무부가 오후 들어 법조기자단 공지를 통해 "'비동의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법무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포함된 소위 '비동의간음죄' 신설 논의와 관련해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해 성폭력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반대 취지의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의 입장이 나오자 여가부는 오후 들어 공지를 통해 "비동의간음죄 개정검토와 관련해 정부는 개정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 과제는 2015년 제1차 양성평등기본계획부터 포함되어 논의되어 온 과제로서 윤석열정부에서 새로이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과제가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알렸다.
상황이 반 나절만에 반전하자 여성계에서는 정권 실세가 수장으로 있는 법무부가 존폐기로에 놓인 여가부를 압박해 사회적으로 오랜 기간 논의되어 온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한국성폭력 상담소, 한국여성의 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100여개 여성단체들이 결합해 만든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27일 오후 성명을 통해 법무부를 규탄할 예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최원진 사무국장은 "폭행, 협박 등 실제 폭력이나 협박이 수반된 강간사건보다도 무형의 위협, 위압이 가해진 강간이 더 많다"며 "폭력에 준하는 위압적인 고압적인, 제압적인 성폭력 피해가 많은 상황에서 기존 형법 틀 안에서는 처벌의 한계가 있다"고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옹호했다.
최 사무국장은 "법조계에서도 개정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2005년부터는 판례에도 (비동의 간음죄가)반영되고 있다"며 "UN에서도 (한국의)강간에 대한 규정이 국제협약에도 어긋난다고 개정을 권유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 사무국장은 나아가 정부 부처간 정책조율 능력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책임론을 동시에 제기했다.
그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한동훈)법무부 장관도 양성평등위원"이라며 "(한 장관이)대리를 내보냈겠지만 의견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여가부 정책을)무책임하게 뒤집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법무부가 이런 반박을 내놓자 여가부가 부랴부랴 없던 일로 하는 상황도 엄중히 보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는 미투 이후 핵심적 내용"이라고 말했다.
손대선 기자 sds110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