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설립 논란이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내건 것이 정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다.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제주특별법 내 영리병원 허용 조항도 삭제해 영리병원 논란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고법 제주 제1행정부(재판장 이경훈)는 지난 15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위법 판단을 내린 원심(1심) 판결이 정반대로 뒤집혔다.
녹지제주는 물론 향후 다른 영리병원이 설립되더라도 내국인 진료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종식될 가능성이 커졌다.
영리병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기관을 말한다. 주식회사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지 않고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고가 진료를 유도하는 등 의료비 폭등, 의료 불평등 같은 부작용 발생이 불가피한 셈이다.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건강보험 의무가입제 등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 건강을 위한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2심 재판부 역시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시에는 장래 보건의료체계에 미칠 불확실한 파급효과에 대한 예측과 이에 대한 대비가 수반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제주도와 병원 측의 병원 개설을 두고 벌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녹지병원의 개설허가를 내줬지만, 이에 반발한 녹지병원은 설립 개원 시한인 2019년3월까지 개원하지 않았다. 이에 제주도가 개설허가를 취소하자, 병원 측은 취소 처분을 무효화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병원은 다시 개원하려 했지만, 제주도는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며 또 다시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이에 병원 측은 이 처분에 불복해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첫 재판은 오는 3월14일 오후 3시40분에 열릴 예정이다.
제주도는 ‘내국인 진료 제한’이 적법했다는 재판부의 판결로 개설 허가 취소 소송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제주도는 지난 15일 별도의 자료를 내고 “오늘 녹지제주가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외국의료기관개설 허가 취소처분(2차) 취소 소송에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영리병원 설립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도특별법은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제한하고 있는 의료법에 특례를 둬 영리법인을 포함한 외국인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는 이 특례조항에 내국인 진료 제한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제2의 녹지병원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021년 9월 외국의료기관 및 외국인전용약국 개설에 대한 특례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도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끝으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5일 “오늘 재판부의 판결은 전무후무했던 영리병원 관련 재판 논란을 종식하는 기준점이 돼야 한다”며 “더는 영리병원 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제주특별법 내 영리병원 허용 조항을 하루빨리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도 16일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는 시도를 다시 할 수 없도록 영리병원의 허용 근거가 된 제주특별법 조항을 폐기하고 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