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한약재와 채소, 해산물, 장 냄새들이 코를 자극한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 얘기다. 지난 24일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경동시장은 제기동역에서부터 시장을 찾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방문한 사람들의 연령대가 보다 젊어졌다는 것. 그동안 어르신들로만 가득했던 시장에는 대학생부터 가족 단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젊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타벅스’ 때문. 제기동역 2번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 경동시장 중앙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이제 경동시장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한약재와 채소, 음식 냄새에 뒤섞여 있던 시장 골목에 커피 향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한 대학생(22)은 “친구들 사이 여기가 요새 굉장히 인기다. 저희도 오늘 처음 가보는데 이곳 시장 분위기가 굉장히 새로워서 그만큼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22)는 “방문객들이 너무 많다고 해서 걱정이다. 몇 번 와본 친구가 주말은 어림없고 그나마 평일이 괜찮다고 하던데 그마저도 자리 잡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일평균 방문객 수는 약 1000명 이상이며 주말의 경우 2000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한다. 지난해 12월16일 오픈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28년간 폐극장으로 방치됐던 경동극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 카페로 구현됐다. 이곳 매장의 가장 큰 특징은 판매되는 모든 품목당 300원씩 시장 상인들과 지역 인프라를 위해 적립된다는 점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기금은 연간 또는 반기 등 장기적으로 누적된 금액을 경동시장과 협력하여 상생기금으로 조성 및 사용될 예정”이라며 “오픈한 얼마 되지 않아 지원금 조성 금액이 아직은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계단을 따라 스타벅스로 올라가봤다. 먼저 방문객들을 맞는 곳은 스타벅스가 아니라 금성전파사다. 스타벅스에 들어서기 전 LG전자의 커뮤니티 스토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에는 1958년 금성사 설립 이후 최초로 선보인 흑백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전시해 놓았다. 나이가 조금 있는 방문객들은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고, 젊은 친구들은 레트로 감성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놀거리도 마련돼 있다. 'ThinQ 방탈출 카페'와 '금성오락실' 등의 체험존은 젊은 방문객들 사이 더 인기다. 일회용 컵을 활용해 친환경 화분을 만들거나 폐가전에서 추출한 재생 플라스틱으로 팔찌 등 굿즈 제작도 할 수 있다.
이날 현장에서 자녀와 오락을 즐기고 있던 한 방문객(43)은 “딸은 이런 오락실 게임기를 직접 해본 것은 처음일 것”이라며 “가족끼리 방문했는데 저도 옛날 생각도 나고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옛날 극장식 양문 출입구를 밀고 들어간 스타벅스 매장 내부는 시장과는 전혀 분위기로 가득 하다. 매장은 전체 363.5평 규모, 200여석의 좌석으로 구성됐다. 내부는 대형극장을 리모델링한 만큼 정면을 향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계단모양 좌석이 즐비하다. 또 주문을 하면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주문번호가 벽면에 영사된다. 주문받는 테이블은 스타벅스의 재고 텀블러를 재활용해 만들었다.
매장 안에서 만난 박모씨(33)는 “오는 길이 정말로 경동시장 한복판을 지나서 와야 해서 계속 이 길이 맞나 생각할 정도였다”며 “덕분에 시장 구경까지 하고 들어오니 전통시장 테마파크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카페 이상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주말에 왔더니 30분 째 자리를 못 잡아서 결국 계단에 앉아서 먹고 있긴 하지만 한번쯤 오기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새로운 젊은 방문객들만 환호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시장 상인들 또한 환영했다. 새로운 방문객들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방문 그 자체만으로도 시장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것.
건어물 등을 판매하는 상인 A씨는 “스타벅스 매장이 오픈한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해서 알아보니 스타벅스 매장이 크게 들어섰다고 하더라”며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코로나 한창일 때 사람들이 없어서 힘들었다. 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시장 내부에서 만난 방문객들은 먹거리 부족의 아쉬움을 꼽았다. 한 30대 커플은 “시장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음식들이다. 떡볶이, 붕어빵, 호떡 등 시장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 서울의 다른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도 이같은 방문객들의 바람을 인지하고 있는지 경동시장과 약령시장 일대에 야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3월 중으로 경동시장 옥상 주차장에 푸드트럭을 마련해 젊은 방문객들을 더욱 유치할 계획이다. 약령시장은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데 여기에 상설 야시장을 열어 젊은이들의 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한의학 도서관도 구상 중이다. 이 모든 게 스타벅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구상이다.
이와 관련 한 20대 커플은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한강공원의 밤도깨비 야시장과 맞먹는 인기 공간이 될 것 같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들 방문하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인 C씨도 “전통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젊은 사람들이 상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이들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방문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세대가 한 데 섞여야 새로운 시너지가 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