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간 의료현안 협의가 2주째 잠정 중단됐다. 대한의사협회가 간호법 본회의 직회부에 반발하며 회의에 불참한 탓이다. 필수의료 대책을 비롯해 비대면 진료, 의대 증원 등 산적한 의료계 현안 논의가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24일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현안협의체 회의가 잠정 중단됐다. 의협 관계자는 “의정협의체는 잠정 중단된 상태”라며 “간호법 정국이 끝나기 전까진 회의 재개는 요원할 것 같다”고 밝혔다.
2년여만에 재가동된 의정협의 기구가 멈춰 섰다. 복지부와 의협이 참여하는 의료현안협의체는 매주 필수의료 대책, 지역의료 공백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020년 의대 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신설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의정협의체가 구성됐지만,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2021년 2월을 끝으로 잠정 중단된 바 있다.
이번에 발목을 잡은 건 간호법 제정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되자 그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일 복지위는 위원장 직권으로 간호법 제정안의 직회부 건을 상정, 무기명 표결을 거쳐 가결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 처우 개선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들은 간호법이 의료 질을 저하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현 대한병원협회 전문위원은 24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며 “간호사독점법은 직종간의 업무범위 상충으로 보건의료인간 업무범위 침탈, 보건의료체계 붕괴 등 여러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법안을 반드시 재논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새 비대위를 구성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지난 23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 회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하며 간호법 저지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단시일 내 의정협의가 재가동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내부에서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새 비대위를 꾸린 만큼 더 강경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파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우선 13개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가 오는 26일 400만 총궐기대회를 열며 공세를 펼칠 계획이다. 김 이사는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이 통과되면 파업하겠다고 밝혀왔다”며 “보건복지의료연대가 지속되는 한 의협도 연대파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의협 비대위 활동과 별개로 산적한 의료계 현안 논의는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의료 현장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탓이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도 상반기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자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모집정원이 있는 50개 대학병원 중 정원을 다 채운 곳은 서울대병원이 유일했다. 38개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소아과 붕괴 위기가 눈앞에 닥친 것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반쪽짜리 대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복지부는 지난 22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하며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추가 지정 계획 등을 밝혔지만, 소아청소년과 인력 충원·양성 분야 대책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의료현안협의체 중단에 따라 의대 증원 논의가 막힌 탓에 인력 확충 대책이 빠졌다.
정부는 의협을 향해 논의 테이블에 앉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22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브리핑에서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저지) 비대위와 의료현안 협의체 논의는 구분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논의되던 과제들은 조속하게 의료현안 협의체가 재개돼서 논의할 수 있도록 협의해나가겠다”고 전했다.
의협은 조속히 필수의료 대책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데는 공감했으나, 당장은 간호법 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이사는 “의료계 현안 논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접근해 대책을 내야 한다”면서도 “다만 새 비대위까지 구성했는데, 한쪽에서는 협의체 회의를 한다는 것을 회원들이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한동안은 역량을 간호법 저지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