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답한 여성이 4%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남성 응답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20·30대 여성들은 독박육아, 경력단절로 인한 우려가 커 결혼·출산을 주저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저출산 대책으로 여성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28일 학회지 사회복지연구에 게재된 ‘청년층의 삶의 질과 사회의 질에 대한 인식이 결혼과 출산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1월 만 20∼34세 미혼 남녀 281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는 데 동의한 여성은 4.0%, 남성은 12.9%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출산이 중요하다’고 답한 남성은 61.3%였으나 여성은 42.9%로 무려 20%p 가까이 차이가 났다.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모습이다. 연구를 진행한 박정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팀은 “남성과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출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며 “남성의 삶에 비해 여성의 삶을 대상으로 할 때 ‘결혼·출산 중요하지 않음’ 유형에 속하는 비율이 더 높았고, 반대로 남성의 삶을 대상으로 할 때 ‘결혼·출산 필수’ 유형의 비중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20·30대 여성들은 그 원인을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결혼·출산이 여성에게 ‘리스크’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김모(28)씨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원하는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는데, 결혼이나 출산으로 이 기회를 발로 차고 싶지 않다. 외롭더라도 나에게 투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털어놨다.
송모(31)씨는 “헌신적인 엄마를 보며 결혼 생활이 여성의 희생을 전제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딸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리 만무하다”면서 “출산하면 경력단절로 이어질 것이 뻔한 데다, 유리천장지수가 10년 연속 최하위 국가에서 여성들이 결혼을 꿈꾸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최모(24)씨도 “여성에겐 결혼에 따르는 희생이 너무 크다. 결혼과 동시에 출산 압박을 받고, 아이를 키울 만한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 독박육아에 내몰린다”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웠던 과거와 다르다. 능력만 있다면 아내나 엄마로서의 역할 외에 거머쥘 수 있는 지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는 생각은 안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옛날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들이 구직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현상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만 출산과 양육 부담이 전가되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가족에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일과 가정은 양립하기 어렵다.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특히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결혼·출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가 조속히 바뀌어야 한다”며 “근로자인 엄마, 아빠가 육아휴직을 쓸 때 불이익을 받지 않고, 출산·양육을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지 않아야 청년들이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청년들에게 결혼·출산이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게 되며 가정에서의 불공정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특히 결혼·출산이 여성들에겐 경력단절, 독박육아 등으로 불리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는 성평등한 돌봄이 실현돼야 한다. 그래야 독박육아, 경력단절이 사라질 수 있다”면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돌봄체계가 완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