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37)에게 프로포폴을 처방한 의사가 스스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것으로 확인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마약류 관리에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의사들의 셀프 처방을 금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유씨의 프로포폴 투약 혐의와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강남구 소재 의원에 방문했다가 의사 A씨가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있는 정황을 발견해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유씨의 프로포폴 처방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의사가 스스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는 이른바 마약류 ‘셀프 처방(자가 처방)’은 현행법상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탓에 마약류 셀프 처방이 제도 사각지대에서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의사의 셀프 처방 의심 사례는 2018년 5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년 1개월간 10만5601건, 처방량은 355만9513정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약류 셀프 처방이 추정되는 의사 수는 △2018년 5~12월 5681명 △2019년 8185명 △2020년 7879명 △2021년 7736명 △2022년 1~6월 5698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마약류 처방 이력이 있는 의사 대비 각각 6.0%, 8.1%, 7.7%, 7.4%, 5.6%를 기록했다.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대리처방한 뒤 본인이 투약하거나 다른 의사의 명의를 도용해 마약류를 처방해 투약한 경우도 있었다.
마약류 약품의 경우 중독성이 심한 데다 자칫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선 마약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 의원은 마약류 셀프 처방을 금지하는 내용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자신이나 가족에게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하거나 제공할 수 없고, 자신이나 가족에겐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기재한 처방전도 발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외 일부 국가에선 의사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마약류 처방을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는 의사가 자신이나 가족에게 마약을 포함한 통제약물을 처방하거나 투여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호주는 의사가 자신 또는 가족을 치료할 수 없어 처방도 불가능하다. 미국 코네티컷주는 응급상황을 제외하고 규제된 약물의 처방·투여를 금하고 있고, 텍사스주도 의학협회에서 셀프 처방을 제재하고 있다.
최 의원은 1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식약처 자료를 분석해보면 매년 8000여명이 마약류를 셀프 처방하고 있다. 심각한 상황인데 규제 방안이 없다”면서 “마약류 셀프 처방을 의사의 양심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의사 본인과 환자 안전을 위해 엄격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식약처는 해당 법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식약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 “마약류 오남용을 방지하려는 개정안의 취지엔 동의한다”면서도 “의사가 본인과 가족에게 마약·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발급하거나 투약하는 등의 행위 자체를 마약류 오남용으로 단정하기 어려워 입법을 통한 의무 부과 방식보단 다양한 정책수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퇴치연구소장(아주대 약학대학 교수)은 “개정안은 의사 고유의 진료권 및 처방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면서 “법안을 통해 강제로 금지하기 보단 가이드라인을 통해 권고하거나, 명확한 근거를 적어야 처방할 수 있는 유인책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