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라면을 한 입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과자 한 조각도 한 입 베어 물고 남긴다. 저녁은 아이스바닐라라떼로 때운다. 그의 하루 일과를 담은 영상 이름은 ‘38㎏의 하루 VLOG’. 자칭 ‘소식좌’라 소개한 여성은 “40㎏대가 되고 싶지 않아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길렀더니 적게 먹어도 포만감이 든다”며 다이어트 비법을 전한다.
최근 Z세대 사이에선 ‘소식좌’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극단적인 소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소식좌는 적게 먹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SNS와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소식좌 먹방’, ‘소식좌 일상’과 같은 제목의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소식 먹방’의 대표적인 콘텐츠, 유튜브 채널 ‘흥마늘 스튜디오’의 웹 예능 ‘밥맛 없는 언니들’은 최고 493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하루를 아이스바닐라라떼 한 잔으로 버티거나, 김밥 네 알을 먹으면 폭식을 한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초절식에 가까운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이래서 말랐구나’ 식의 자막으로 출연자들의 마른 몸매를 부각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간 대식이 먹방 트렌드였는데, 소식이 유행하면 건강한 식습관이 형성될 것 같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외모나 체형에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에게 다이어트 강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소식좌 유행이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른 몸매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소식’이 아닌 ‘초절식’을 부추겨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거식증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식사장애 환자는 △2017년 8168명 △2018년 8541명 △2019년 8799명 △2020년 9463명 △2021년 1만900명로 증가 추세다. 본인이 환자임을 인지하지 못해 치료를 받지 않는 통계 밖 환자들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20대, 여성 환자가 두드러지게 많다. 2021년 기준 남성은 2067명, 여성은 8833명으로 여성이 3배 가까이 많다. 연령대별로도 10대는 1079명, 20대는 2382명으로 전체 환자의 31.75%에 달한다.
백명재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1~2년 사이 섭식장애로 내원하는 환자가 크게 늘었다”며 “아이돌, 인플루언서들의 마른 몸매가 칭송 받는 것이 청소년,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소식좌 유행이 자칫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키 178㎝에 체중 36㎏인 환자가 최근 입원했다. 내과에선 급사 위험성이 있다고 할 정도인데, 본인은 심각성을 몰라 가족들이 억지로 데려와서 치료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섭식장애의 문제는 본인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특히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치사율이 높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섭식장애의 위험 징후를 스스로 인지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먹고 구토를 하거나, 매일 체중을 확인하며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 본인의 체중과 몸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 여성의 경우 생리주기가 달라지는 게 보이면 식이장애로 넘어가는 징후일 수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백 교수는 “섭식장애는 마르고 싶다는 욕구, 살찌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인해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질환으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체중을 더 빼면 안 되는 적정 체중이나 저체중이 소식을 할 경우 몸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보다 적게 섭취하기 때문에 영양 결핍 등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일부는 섭식장애를 비롯한 정신의학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영양이 결핍될 경우 근육량이 줄어들고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오히려 살이 더 잘 찌는 체질이 될 수 있다”며 “여성이나 청소년은 오히려 골밀도가 떨어진다든지, 빈혈, 근감소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적게 먹으면서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 교수는 “소식 자체는 건강한 식습관이 맞다”면서 “이는 다만 적정 몸무게를 위해 체중 조절이 필요한 사람에 한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강 교수는 “섭취 열량은 줄이되 영양 균형을 맞게 챙겨 먹어야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며 “소식을 할 경우 비타민, 미네랄 등이 결핍될 수 있는 만큼 필수 영양소를 챙겨먹으면서 전체적인 칼로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다이어트가 된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