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어린이날과 가정의달 행사로 굿판을 연상케 하는 공연이 열렸다. 이를 두고 작품 선정이 부적절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 문화본부 산하 서울문화재단은 7일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서울서커스페스티벌을 개최했다. 6회를 맞이하는 이번 축제는 지난해 문화비축기지(마포구)에서 진행했으나 올해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무료로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재단은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단위 관람객을 위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축제장에는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서커스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이와 함께 시민들이 평소에 접하지 못한 서커스 공연도 준비했다.
재단이 준비한 공연에는 ‘풀어내다’라는 에어리얼 서커스(공중 곡예)도 있었다. 재단 측은 행사 카탈로그에서 이 공연을 “‘액을 모은 뒤 달래고 풀어준다’라는 시간의 흐름을 공중에 매달린 외줄 천(에어리얼 실크)으로 표현한 ‘살풀이를 재해석한 현대 서커스’다. 살풀이의 미학과 가치를 서커스 예술 언어로 재해석하고 작품을 통해 모두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고 소개했다.
살풀이는 ‘살을 푼다’ 혹은 ‘액운을 푼다’는 의미로 굿판에서 무당이 추던 주술적인 의식을 위한 춤이다. 최근에는 주술적 의식에서 벗어나 공연 예술의 한 소재로 분류되고 있다.
실제 이날 진행된 ‘풀어내다’ 공연도 외줄 공중 곡예로 재해석된 현대 무용 혹은 행위 예술로 보였다. 공연을 본 외국인과 시민들은 사진을 찍으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다만 일부 시민들은 행사와 맞지 않는 기획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공연을 본 한 시민은(40대·성동구)은 “아이가 서커스를 본다고 신나서 따라왔는데, 이게 서커스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 굿판 같은 느낌에 당황했다”며 “전통공연이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행사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전통공연을 해야 한다면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흥겨운 외줄타기 등이 서커스 축제에 더 어울렸을 것”이라며 “차라리 마술 공연이라도 했으면 애도 즐겁게 봤을 것”이라고 했다.
또 따른 시민(중구)도 “축제 카탈로그에 ‘살풀이’라고 돼 있는데 이태원 참사 등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안 좋은 일에 대한 추모 성격으로 기획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치밀하게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을 구성을 할 때 어린이날 시즌에 진행을 하다 보니까 전반적으로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들어갔다”면서도 “어린이들이 혼자 오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온다. 어쨌든 5월이 ‘가정의달’이고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해 준비했다. 어린이들만 즐길 게 아니라 같이 오는 부모님들도 함께 봤을 때 좋을 만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같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살풀이라는 게 나쁜 사례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면서 “가정의달 맞아서 시민들의 가정에 있는 나쁜 것을 덜어내고 좋은 기운을 넣는다는 의미로 포함시켰다”고 덧붙였다.
이태원참사 등 서울시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전혀 연관이 없다”면서 “열린 잔디밭에서 새로운 형태의 서커스를 볼 수 있는 공연들을 고민해서 선정했다”고 선을 그었다.
전통문화계에서는 이번 행사에 대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만한 행동이란 지적이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관계자는 “살을 푼다라는 것은 맞나 틀리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살풀이 공연은 무방하나, 웬만하면 안 하는 게 나았었을 것 같다”면서 “지금은 살풀이를 (주술적)의식으로 하지 않는다. 그냥 공연 예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공연 예술 소재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는데, 어린이날 행사라면 다른 것도 할 거 많은데 ‘굳이 왜 그걸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공연이 진행된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은 경복궁 옆에 위치하고 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식민자본인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섰고 광복 후에는 미군숙소와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숙소로 쓰였다. 근현대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10년 동안 출입되지 않던 이곳을 잔디광장으로 꾸며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