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을 둘러싼 보건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극한에 치닫고 있다. 제정을 원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단체행동’을 예고한 탓에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오는 17일 의사단체의 총파업 일정까지 구체화되는 등 의료대란 우려가 커지자, 적극 중재에 나서지 않은 정부를 책망하는 목소리도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들을 심사했으나, 간호법 제정안은 이날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간호법을 이송받은 지난 4일로부터 15일 이내 공포하거나 이의가 있으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하기 때문에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 내에 존재했던 간호 관련 내용을 별도의 법안으로 분리해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적정 노동시간 확보 등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명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간호법을 두고 보건의료계가 둘로 쪼개졌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들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의료현장에 혼란이 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도 지지한 만큼 제정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단체행동’을 불사하겠다고 예고하는 등 각 진영 간 세 대결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의료 대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당장 오는 11일에는 치과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대한민국 보건의료 2차 잠시멈춤’ 기자회견을 갖고 “치과 의사들이 지난 대의원총회 결의에 따라 하루 휴진을 한다”고 밝혔다.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은 “모든 치과에 휴진해 줄 것을 공문을 통해 안내했다”면서 “(파업 참여를) 강제할 수 없지만 참여율이 대단히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80~90%인 2만여 곳이 휴진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3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연가투쟁에는 간호조무사 1만여명을 포함해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등 2만여명이 동참했다.
이 같은 집단행동에도 불구하고 간호법 재논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오는 17일 ‘400만 연대 총파업’ 등 수위가 높은 투쟁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간호사들도 반격에 나섰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을 위해 ‘무기한 단식’ 투쟁까지 감행하며 대통령실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은 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50만 간호사와 12만 간호대학생을 대표해 사생결단의 각오로 협회 회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면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도 경고했다. 간협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단체행동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14일까지 받아, 15일 발표할 예정이다.
단체행동의 경우 보건복지의료연대와 같은 ‘총파업’ 수위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간협 관계자는 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견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간호사들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간호사들은 지금껏 파업을 한 적이 없다. 단체행동이라면 가령 초과근무가 잦은 간호사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 준수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양측 모두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며 의료현장에 혼란이 빚어지자, 적극 중재에 나서지 않은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9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의료대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이 의료대란을 정부가 방관하고 여당은 은근히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