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 해지 방법을 검색해봤어요. 미래에 못 받을 수도 있는데, 왜 국가가 가입을 강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윤지·31·여)
“월급 명세서를 볼 때마다 국민연금을 왜 내야하는지 의문입니다.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도 강제로 돈을 걷어가는 시스템을 누가 찬성할까요.” (김재헌·28·남)
“왜 20·30대가 피땀 흘려서 일한 돈으로 주머니 사정이 상대적으로 더 넉넉한 기성세대의 노후를 보장해줘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됩니다.” (박은영·27·여)
“국민연금 말고 개인별로 적금이나 주식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박주은·27·여)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차라리 안 내고 안 받겠다”는 말이 잇따른다. 기금 고갈로 인해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 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31일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될 경우 오는 2041년부터 적자를 기록해 2055년엔 곳간이 바닥난다.
정치권이 책임을 방기한 결과다. 저출산·고령화 심화에 따라 ‘고갈 시계’가 빨라졌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 ‘선거판에서 인기 없는 공약’이라는 이유로, 정치권이 국민연금 개혁을 폭탄 돌리듯 미뤄온 탓에 청년세대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정권과 다른 행보를 보일까.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노동, 교육과 함께 연금을 3대 개혁 과제로 꼽으며 추진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첫 국정 과제 점검회의에서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취임 1년간 ‘윤석열표 연금 개혁’은 이렇다 할 윤곽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대선 공약이었던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 설치’도 사실상 철회했다. 대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가 그 공을 이어받았다.
현재 논의는 국회 연금특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첫 회의를 가진 연금특위는 올해 4월 말까지 민간자문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가 지난 3월 연금 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숫자 없이 ‘추가 논의해야 한다’는 내용만 담긴 보고서를 제출한 탓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특위는 10월 말까지로 활동 기간만 연장하게 됐다.
윤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정부도 국회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보다 돈을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보험료율), 지금과 비교해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소득대체율)가 전 국민의 주머니와 직결된 사안이라 여론의 부담이 큰 탓이다.
이를 해결할 실마리는 국민들, 특히 청년층의 우려 해소다. 청년들은 개혁안에 ‘확실한 노후소득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세 직장인 박주은씨는 “퇴직 이후 연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더 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31세 김윤지씨도 “노인이 돼도 빈곤하게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생계에 도움이 되는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폭탄 돌리기 그만…연금 자문위 “당장 개혁해야” 한 목소리
최근 국민일보가 여론조사 전문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산업 정책 1년의 평가 및 향후 과제’를 설문 조사한 결과 20대의 42.1%, 30대의 38.6%는 연금 개혁을 가장 중요한 개혁으로 꼽았다. 이대로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미래 세대의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국회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 소속 전문가들도 정치권이 계속 표 계산하며 개혁 시간만 늦추다가는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당장 개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기금이 소진되면 못 받는다는 청년층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개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젊은 세대들이 국민연금을 못 믿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연금이 좋은 제도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전문가들이 적극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간연금은 월 100만원 낸다면 노후에 100만원을 준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가치가 떨어지는 제도”라면서 “국민연금은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받고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지급된다. 이만큼 좋은 금융상품이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기금이 2055년 고갈되더라도 충분히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며 정치권이 불안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금이 고갈되면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받지 못한다며 정치권이 불안을 조성하는데,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미국, 스웨덴, 핀란드, 일본 등을 제외하고 기금 없이 매달 들어오는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해외 국가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청년들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노인이 되기에 국민연금에 가입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현행 연금제도만으로는 충분한 노후소득 보장이 어렵다.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기초연금, 퇴직연금도 손질해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년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구체적인 재정추계안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청년들이 국민연금 제도에 대해 불신하는 것을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기금 고갈에 대한 불안을 덜기 위해서는 향후 20~30년 동안 재정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세대 간 갈등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연금 개혁 필요성 공감…청년계층 불안 해소방안 논의”
정부는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개혁 작업 속에서 청년층의 불안해소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박재만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정책과장은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당연히 연금은 지급된다”며 “다만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의 진전은 당연히 현재의 청장년이 아닌 그 이후 세대의 부담을 폭발적으로 늘리게 된다. 그래서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금제도 도입 이전인 현 노인 세대의 빈곤율과 자살율의 문제, 연금개혁의 주 대상이 될 수 있는 청장년층의 불안 문제, 그 이후 세대의 부담 폭증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개혁 방향 모색이 그래서 중요하다”며 “세대 간 공정한 부담 공유를 개혁의 방향으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지급보장 명문화 등 젊은 세대의 불안을 덜 수 있는 방안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은빈, 신대현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