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어하지?"
임신한 아내의 안부를 물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아내가 임신부로 지낸 세월은 약 2년 6개월. 그 기간 동안 아내가 많이 힘들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난 1초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해 왔다. 첫째 때는 아내가 막연히 힘들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둘째 때는 그래도 이전 경험이 있으니 순탄하지 않을까 짐작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셋째를 임신한 아내는 달랐다. 손발이 붓고 입덧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 했다. 밤잠까지 설치며 힘들어했다. 임신 기간, 무심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쳐갔다.
셋째가 태어난 지 여섯 달을 향해간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지만, 아내의 회복은 아이의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임신 증상이 여전히 나타나 허리 통증, 부종, 뼈 시림을 아직도 느끼고 있고 태아를 담고 있던 자궁은 수축 속도가 더뎌 출산 후에도 임신 6개월을 연상시킨다. 우울감이 심해지고 수유 등으로 굽은 등은 펴질 줄을 모른다. 움직일 때마다 ‘아고고’ 앓는 소리 내는 아내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보태 아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싶었다.
나: 자기, 나 임신부 체험키트 빌려왔어.
아내: 진짜? 괜찮겠어? 임신 장난 아닌데.
나: 체험복만 입으면 되는 건데, 할 만하지 않을까?
아내: 언제부터 시작하게?
나: 일단 마음의 준비부터 하고. 체험복 입은 채 일하고, 잘 때도 입고 있으려고. 근데 임신 중에 뭐가 제일 힘들었어? 그것 위주로 체험해 볼까 생각 중인데.
아내: 제일 힘든 거? 모든 일상.
나: 아!!!!!!!
아내: 운전하거나 회사에서 일할 때, 앉으나 서 있던 모든 순간, 애들과 놀아주다 쉬는 일분일초, 설거지, 빨래, 청소, 잠들 때까지. 아참, 잠들어서도.
나: ........
임신부 체험키트를 받고 놀랐다. 앞치마처럼 어깨에 메고 허리에 묶는 방식인 체험복이 생각보다 크고 무게가 상당했다. 볼록 나온 아랫배 쪽으로 꽤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들어있다. 7개월 태아의 무게로 약 7kg이라고 하는데 원래 이렇게 큰가. 체험 전 2박 3일 동안 착용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내는 세 아이 임신 중 모두 출산 예정일까지 근무했다. 최소한의 공감을 얻고자 체험복을 입고 일터로 나섰다. 이날 취재일정은 상명대 교수 인터뷰.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이미 피하지방으로 가득한 배에 체험복을 더하니 운전대에 배가 닿았다. 의자를 뒤로 밀고 앉으니, 이번에는 짧은 다리가 말썽이다. 어떻게 해도 편안한 운전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배 쪽으로 무게가 몰리자 허리가 점점 아파졌고 운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고작 체험복 하나만으로도 운전이 힘든데, 난 가끔 바쁜 일을 핑계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었다. 갑자기 운전석에 앉으며 쏟아내던 아내의 원망이 귓전에 울린다. "임신부를 이렇게 운전시키면 안 돼. 자세가 불편해서 운전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임신 중에는 반사 신경이 둔해져서 돌발 상황에 즉각 대처하기 힘들다니까."
취재원의 연구실은 교수회관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자, 습관적으로 계단으로 향했다. 카메라 2대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르니 복부에 압박이 심해졌다. 겨우 100개 남짓한 계단에 숨이 차올랐다. 사진 찍기도 쉽지는 않았다. 자꾸 툭 튀어나온 배가 거추장스럽다. 그나마 여유롭게 찍을 수 있었던 날이라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문득 임신 중 취재 현장에 나와 분주하게 움직이던 동료 여기자들이 기억났다. 새삼 대단하다고 느끼며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좀 도와줄걸.’ 인터뷰를 마치고 주차장에 오르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언덕 위 주차장이 정복해야 할 고지처럼 느껴졌다. 차에 오르자마자 체험복을 벗어 던졌다. 종일 체험을 계획했던 나의 의지는 고작 두 시간 만에 무너졌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은 임신했다고 피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우선 청소. 먼지는 청소기가 빨아들인다고 치지만, 바닥 구석구석은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닦으려니 자세가 영 안 나온다. 결국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근처를 닦고 몸을 밀어 움직였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결정적으로 몸이 무거워 움직이기 싫었다. 다음은 설거지. 볼록 나온 배가 자꾸 싱크대에 닿는다. 불편해서 엉덩이를 뒤로 빼니 자세가 어정쩡해진다. 수전이 멀어지며 물이 자꾸 바닥에 튀었다. 비교적 청소보다는 수월했지만, 애매한 자세 때문에 금세 어깨와 허리에 고통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빨래.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빼기 위해 몸을 굽힐 때마다 무릎과 허리에 중력이 느껴진다. 빨래는 진짜 남편이 해야 한다.
지친다. 낮잠 좀 자려고 침대에 예쁘게 누웠다. 그 장면을 본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누워서 잠 못 자." 아내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배에 장난꾸러기 아들이 앉은 느낌이었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피하지방과 체험복 속 모래가 바닥으로 쏠린다. 천장을 보고 눕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이 자세로 장시간 자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내가 왜 깊은 잠에 못 들고 뒤척이는지 깊이 공감했다. 미안합니다.
막내딸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 앞, 엄마와 동행한 어떤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 나의 배를 만져본다. 앞치마로 가리긴 했지만, 배 나온 아빠가 아기를 안고 있으니 생경할 만하다. 뜨거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새도 없이, 셋째를 안고 있는 나의 팔과 허리가 아파진다. 딸은 약 6개월, 몸무게 7kg 정도다. 평소에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안고 다닐 수 있는 무게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아이를 배 위에 얹어 안을 수밖에 없다. 모래주머니가 복부와 허리를 옥죄어 왔다. 또다시 떠오르는 아내의 모습. 첫째와 둘째의 터울이 고작 17개월이라,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아내가 임신 중에 첫째를 안고 다녔다. '피가 비쳐 병원에 갔던 적도 있었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와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전문의는 임신부 체험복을 알아보시고는 웃으며 말씀하신다. "임신 체험이죠? 아버님, 진짜 가정적이네요."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순간이었다.
아내: 어때? 할만했어?
나: 아니, 계속 입고 있기는 힘들더라.
아내: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 조금 느꼈어?
나: 응. 조금.
아내: 자기가 겪은 건 임신 증상의 20%도 안 돼.
나: 무슨 말이야?
아내: 출산까지 수월하게 잘 지내는 산모도 있지만, 아닌 임신부가 훨씬 많거든. 내가 찐막이(셋째) 임신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울렁증, 구토, 부종, 허리 통증, 체중 증가, 속 쓰림, 두통, 출혈을 비롯해 온갖 증상이 나타나잖아. 그런데 체험복으로는 모두 경험하지는 못하니까.
나: 그렇지. 그래도 막연하게 '힘들겠지' 싶었는데, 체험해 보니까 조금은 알겠더라고. 배가 좀 무거워졌다고 온몸이 힘들더라고.
아내: 오! 그렇다면 이번 임신부 체험 정말 잘했네. 좀 일찍 체험하지. 찐막이 임신했을 때 같이.
나: 그럼 애들은 누가 보냐. 지금이라도 체험해 보니 정말 느낀 게 많아. 찐찐막이 임신하면 내가 진짜 잘해줄게.
세 아이의 아빠라고 나를 소개하면 주변에선 '애국자'라고 격려해주지만, '애국자의 남편'이 더 정확한 말 같다. 단시간의 체험으로 '엄마의 무게'를 느꼈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단순 무게 변화로만 맛본 임신 경험이지만, 임산부가 느끼는 고통 일부를 깨달을 수 있었다. 10개월간 인고의 세월을 보낸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내와 우리 엄마에게도.
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취재 협조=성동구 보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