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이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19일 ‘윤석열 정부 사회서비스 정책 문제 진단’ 국회 토론회 참가자들은 이같은 진단을 내렸다.
윤 정부는 이르면 하반기 중 돈을 더 내면 고품질의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가격탄력제’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사회보장전략회의 모두발언에서 “사회보장서비스 자체도 시장화·산업화 되고,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취약계층 위주의 사회서비스를 중산층으로 확대하고 서비스 이용료를 차등 부담해 서비스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민간 공급자 간 경쟁을 유도하면, 사회서비스의 품질이 높아질 것이란 복안이다. 가령 단순 돌보기만 하는 보육을 넘어 놀이 교육과 예체능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한 ‘융합형 돌봄 모형’ 같은 고품질 서비스가 출시될 수 있단 얘기다.
이를 두고 토론회 참가자들은 ‘헛다리’를 짚었다고 혹평했다. 아동보육, 노인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등 사회서비스는 이미 민간 영역에 충분히 개방돼 경쟁하고 있으며, 정부가 오히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경쟁 체제 도입’이 아닌 ‘종사자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미 주요 사회서비스는 중산층이 보편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사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확대했는데도 경쟁력 있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종사자의 처우’에서 찾았다. 양 교수에 따르면 돌봄노동의 임금 수준은 2021년 전체임금근로자 평균의 60% 수준이다. 그는 “휴먼서비스에서 제공인력의 질이 곧 서비스 질을 좌우하며, 좋은 일자리에 좋은 제공인력이 지원한다”며 “불안정, 저임금, 사회적 인정 수준도 낮은 일자리에서 좋은 서비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겠나”라고 반문했다.
정작 취약계층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면 ‘이용자 부담 능력’에 따라 차등화된 서비스 제공의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면서 “정부지원금에만 의존할 가능성이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서비스에서 배제하거나 차등화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제조업과 달리 사회서비스 시장은 과도한 경쟁을 부추길 경우 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제조업의 경우 기술혁신을 통해 보다 양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하나, 돌봄서비스의 경우 인간 간의 관계에 기반한 서비스”라며 “시설 간의 출혈 경쟁은 결국 돌봄노동자의 임금이나 처우를 악화시켜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킨다”고 밝혔다.
‘규제 개선’이 이뤄질 경우 사회서비스 기관이 난립해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미 낮은 수준의 진입 규제를 풀면 제공기관의 난립이 불 보듯 뻔하다”며 “사회복지적 가치를 갖고 진정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사람보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 시장을 노리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제공기관 입장에서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면 각종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제공기관의 불법 행위도 더욱 판칠 것”이라며 “공적제도로서 사회서비스의 신뢰성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진입규제 시스템을 체계화해 신규 진입기관의 옥석을 가리고 지자체의 지도·감독 권한을 강화해 낮은 품질의 서비스와 만연한 불법 행위 제공기관을 과감하게 퇴출하도록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은섭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정책과장은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의 몫이 적어지는 것 아닌가’가 가장 큰 우려인 것 같다. 답하자면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민간기관의 근로조건도 개선할 수 있도록 추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