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 가격대가 비교적 낮은 제품으로 사치를 즐기는 이른바 ‘스몰 럭셔리’가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 심리 약화에도 자신에게 아낌없이 지출하는 젊은 세대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름철 스몰 럭셔리 대표 주자는 호텔 빙수다. 현재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판매 중인 ‘애플망고 가든 빙수’ 가격은 12만6000원. 지난 5월 출시해 다음달까지 한정 판매하는 이 빙수의 가격은 국내 특급호텔 중 가장 높다. 지난해(9만6000원)보다 31.3% 껑충 뛰었다.
가격대가 높지만, 호텔 빙수에 대한 수요가 높다. 최근 포시즌스 호텔에서 애플망고 가든 빙수를 먹었다는 박정윤(37)씨는 “1시간 기다린 끝에 호텔 카페에 입장할 수 있었다”며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 고객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망고빙수 원조 격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애플망고빙수(9만8000원)를 먹으려면 주말의 경우 2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 브랜드 화장품 매출도 크게 늘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프리미엄 립제품, 프리미엄 핸드케어, 프리미엄 유니섹스 향수 (일명 니치향수) 등 시장 규모를 합산한 결과, 주요 아시아 국가 스몰 럭셔리 시장 중 한국의 성장이 가장 두드러졌다. 전년 대비 시장 규모는 26.4% 성장했다.
쿠키뉴스가 유로모니터에 요청해 제공받은 ‘스몰 럭셔리 화장품 품목별 한국 시장규모’에 따르면 니치향수로 불리는 프리미엄 향수의 경우 지난해 기준 시장규모는 3100억5000만원으로 전년(2500억1000만원) 대비 24.0% 커졌다. 프리미엄 핸드케어 제품은 지난해 470억3000만원으로 전년 대비(450억2000만원) 4.5% 늘었고, 프리미엄 립제품 시장규모는 3740억7000만원으로 전년(2830억9000만원)보다 무려 32.1% 상승했다.
소비자들이 스몰 럭셔리 제품을 자주 찾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김혜경(30·회사원)씨는 “명품 로고가 있는 것 중엔 5~6만원대 립스틱이 제일 저렴한 편”이라며 “지인에게 선물할 때도 주로 명품 립스틱으로 정한다”고 했다. 윤세영(26·회사원)씨도 “샤넬 가방은 못 사고, 샤넬 립스틱이나 액세서리는 산다”고 말했다.
20만원대 후반대 니치향수 브랜드 바이레도 향수의 향을 좋아한다는 유모(31·회사원)씨도 “향수를 사기에 좀 부담스러우면 10만원대 바이레도 바디로션을 산다”고 했다. 이어 “평범한 20~30대 직장인이 구매하기엔 진짜 럭셔리 사치품은 부담스럽다”라며 “그래서 상대적으로 작고 사소한 사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하이볼 열풍과 함께 주류시장에서 주목받는 위스키와 와인도 스몰 럭셔리의 한 품목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국내 위스키 소비량은 전년 대비 46% 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유로모니터는 국내 럭셔리 와인 시장 규모가 올해 5%대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평소 하이볼을 즐기는 김영수(38)씨는 “부담되는 금액이 아닌데다, 칼로리도 낮고 기분 좋게 술을 즐길 수 있다”라며 “(하이볼을) 다른 종류의 술보다 자주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고물가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한 가운데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인기를 얻는 현상은 ‘립스틱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립스틱 효과는 지난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은 상황에서 립스틱 매출이 크게 증가한 현상을 뜻하는 단어다. 불황일수록 명품 가방이나 외제차 등에 큰돈을 쓰기보다, 프리미엄 화장품 등과 같은 작은 소비재를 구매해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 스몰 럭셔리를 즐기는 청년들은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입을 모은다. 박씨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모일 때 “평소와 다르게 작은 사치를 부린다”라고 했다. 그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망고빙수를 먹은 날, 1인당 12만원인 오마카세도 먹었다”라며 “평소와 다른 특별함에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유씨 역시 “가끔 이렇게 소소하게 소비하면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호텔 카페와 일반 카페 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돈을 좀 더 내고 더 조용한 곳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에 소비를 한다”고 했다. 이어 “버블티를 마시며 오늘 하루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면, 호텔 카페에서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며 느끼는 행복감은 스몰 럭셔리”라고 덧붙였다.
스몰 럭셔리는 지인에게 선물할 때도 유용하다. 김씨와 윤씨는 명품 립스틱, 유씨는 고급 비누를 주로 선물한다고 한다. 윤씨는 “크게 부담되지 않고 어중간한 브랜드보다는 확실히 각인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스몰 럭셔리 소비는 일상생활에서 원동력을 얻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은하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살았다면, 젊은 세대는 현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매일 허리띠만 졸라매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현재와 미래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하고, 미래에 조금 더 방점을 둬야 한다”며 “가계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돈을 벌면서 주거 마련 등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면 명품 소비나 선물은 자기 일상생활에서 원동력을 얻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