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뮤지컬 ‘라이언킹’으로 데뷔한 17년차 배우 차지연은 “무대가 무섭다”고 했다. 크고 작은 극장에 오르며 성별 구분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그가 두려움을 말하다니.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차지연은 이렇게 설명했다. “무대에선 배우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거짓으로 나를 감출 수 없어요. 그러니 무서운 곳이죠.”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조금이라도 더 바르게 살도록 애쓰게 만드니까요.”
이런 차지연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무대에 오른다. 오는 9월2·3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 ‘전시회’(Exhibition)다. 차지연은 ‘서편제’ ‘위키드’ ‘레베카’ 등 출연작만 20편에 달하지만 단독 콘서트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뮤지컬 노래를 단순 커버하는 것 이상의 새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 마음 맞는 스태프들을 만나 공연을 추진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공연에서 ‘살다보면’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 등 뮤지컬 유명곡을 편곡해 부른다. 팝송과 자작곡 ‘별빛’ 등도 들려줄 계획이다.
차지연은 공연을 준비하며 “지난 시간을 결산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데뷔 과정부터 드라마틱하다. 20대 때 가수 데뷔를 준비했지만 6년 동안 음반을 내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에 뮤지컬 오디션을 봤다. ‘라이언킹’이었다. 차지연은 해설자 라피키 역을 맡아 1년간 공연했다. 그는 “먹고 살려고 뮤지컬에 뛰어든 때라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도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마무시한 기적”이라고 돌아봤다. “어쩌다 보니 뮤지컬배우”가 된 청년은 어느새 “무대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할 만큼 천생 배우가 됐다.
국악을 그만둔 뒤 다신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북을 마주하게 한 ‘서편제’부터, “사경을 헤맸다”고 표현한 ‘카르멘’, 임신한 채로 공연한 ‘위키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중도 하차했던 ‘호프: 읽히지 않는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등 사연 없는 공연이 없었다. 차지연은 “당시엔 처절하고 아팠으나 돌아보니 모든 일엔 이유가 있었다”고 봤다. 그는 도전에도 거침이 없다. 뮤지컬은 물론 드라마와 영화도 넘나든다. 한국 공연에선 낯선 젠더프리(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캐스팅도 개척했다. 뮤지컬 ‘더 데빌’과 연극 ‘아마데우스’ 등에서 남성 배우들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차지연은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지킬과 하이드를 연기해보고 싶다. 제작사 대표께도 직접 요청했는데 답이 없다”며 웃었다.
“데뷔 후 지금까지 늘 지키는 루틴(규칙적인 습관)이 있어요. 공연 전 런스루(예행연습)예요. 그 공연을 내가 몇 번 해봤는지 내가 얼마나 익숙한지는 중요치 않아요. 그날 공연은 그날 처음 하는 거니까요. 저를 보러 와주신 관객들을 기만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그런 관객들을 향한 감사함을 응축해서 마련한 자리예요. 준비한 게 정말 많습니다. 보신다면 후회 없으실 거예요. 공연에 제 영혼을 갈아 넣을 거거든요.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공연하고, 다음날 전사할 예정입니다. 하하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