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만세(VIVA LA VIDA).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는 유작으로 남긴 수박 정물화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 그의 인생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6세 때 찾아온 소아마비는 칼로의 오른 다리를 좀먹었다. 18세엔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가 부서졌다. 남편 디에고는 바람피우기 바빴다. 아이도 세 번이나 유산했다. 그런 그가 인생을 찬미하다니.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과 아픔을 가졌잖아요. 프리다는 그걸 예술로 표현했어요.” 지난 1일 서울 도곡동 EMK뮤지컬컴퍼니에서 만난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알리는 칼로의 삶을 이렇게 돌아봤다.
알리는 요즘 일주일 중 절반을 칼로로 살고 있다. 칼로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 ‘프리다’ 덕분이다. 그는 주인공 칼로를 맡아 지난달 초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출연 분량이 워낙 많은 데다 독무도 춰야 해 “멍과 담과 타박상이 일상”이 됐지만 알리는 요즘 즐겁다. “‘프리다’ 덕분에 뮤지컬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2019년 ‘레베카’ 이후 4년 만에 서는 뮤지컬 무대. 처음엔 망설였다. ‘프리다’ 쪽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초연 공연을 보니 난 못하겠다 싶어서 2주간 도망다녔다”고 했다. 이런 그를 호기심이 움직였다. “10년 넘게 가수로 활동하다 보니 쉽고 편한 길이 눈에 보여요. 그런데 그 길로 간 적은 없어요. ‘프리다’를 택할 때도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그 점이 저와 칼로의 공통점 같아요. 칼로 역시 고통 속에 하염없이 누워있지 않았잖아요. 어떻게든 일어서서 무엇이든 하려고 했죠. 저도 더욱 용기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칼로처럼요.”
‘프리다’를 본다면 고통 속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는 칼로의 모습에 눈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알리는 “공연을 본 뒤 칼로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는 반응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 역시 그림에 혼이 빠진 칼로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가령 프리다를 떠났던 디에고가 돌아와 사과하는 장면. 알리는 처음엔 이 장면에서 자기 몸을 끌어안으며 칼로를 애처롭게 표현했다. 요즘엔 다르다. 그 장면에서도 “격렬하게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칼로가 어떤 고통 속에서도 예술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다.
알리는 “‘프리다’ 덕분에 나는 강인해졌다”고 느낀다. 칼로를 연기하며 “내 상처와 예민함을 위트 있게 넘길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알리는 ‘프리다’를 마친 뒤 다시 음악에 매진할 생각이다. 솔비 등 동료 가수들과 신곡을 내고 콘서트도 계획 중이다. 그는 “공연을 하며 내 삶을 돌아보니 온통 기적이었다”고 했다. “노래를 좋아하던 소녀가 부모님 반대에도 가수가 됐고, 리쌍이란 팀을 만나 이름을 알렸죠. 제가 계속 노래하고 있는 것, 남편과 가정을 꾸린 것, 아이를 낳은 것, 평범한 하루하루마저 지금은 모두 기적 같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