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이 한의대 정원을 의대 정원으로 전환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도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의료현장에 미칠 파장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양측의 셈법도 복잡하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1일 보건복지부 주재로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지방의 한의대를 의대로 전환하는 것과 의대와 한의대를 모두 둔 대학의 한의대 정원 일부를 의대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현재 한의대 정원은 12개교 750명, 정원 외 입학을 포함하면 연간 800명 가량이다. 17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에 한의대 정원을 더하자는 것이 한의협의 주장이다. 우선 의대와 한의대 모두 둔 대학 4곳의 한의대 정원을 전환했을 땐 최대 160명까지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게 된다.
한의계가 먼저 한의대 정원 축소를 제안한 건 국내 한방의료 입지가 좁아져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했다고 보고 있어서다. 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건강보험 진료비 중 한방 비중은 2014년 4.2%에서 지난해 3.1%로 감소했다.
한의계는 한의사의 역할이 확대되지 않는 한 정원을 줄이는 게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한의사 역할 확대가 제대로 안 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한의사 수는 과잉 공급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양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면 한의대는 그에 맞게 어느 정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력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한의사들도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 한의협 주장이다. 권 이사는 “한의사도 충분히 교육받은 우수한 인력인데, 역할이 제한돼 있다”며 “한의사의 참여폭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간 한의대 정원을 축소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의협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한의협과 논의가 오가지 않아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의사인력에 한의사도 포함하지 않나. 그러나 필수의료나 응급의료 영역에서 한의사와 의사가 동등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부분은 맞다”고 했다.
다만 한의대 정원 일부를 의대 정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한 두 협회의 셈법은 제각각이다. 지난 2018년 의협과 한의협은 보건복지부와 함께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일원화 합의문(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의학, 한의학의 이원적 의료체계로 인한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 국민의 의료비 부담 증가 등을 해소하려면 의료를 일원화(의과대학 교육 단일화)해야 한단 취지다. 다만 내부 반발에 부딪혀 최종 협의까진 이르지 못했다.
의협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료일원화 논의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김 이사는 “한의협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걸로 알고, 의협 역시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면서도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한의협과 법적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일원화 쪽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상당 부분 있다”고 설명했다.
한의계는 이번 제안이 의료일원화 논의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선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다. 권 이사는 “의료일원화는 이번 제안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의협도 마찬가지겠지만, 한의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