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3년 잠자다 깨어난 백제 예술의 극치 [쿠키칼럼]

1333년 잠자다 깨어난 백제 예술의 극치 [쿠키칼럼]

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맞아 기념행사 풍성   
백제 장인의 예술혼 되살려 K공예 세계화해야       

기사승인 2023-11-27 15:01:23

[쿠키칼럼-이희용]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 온조왕 때 지은 궁궐을 묘사한 문구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여러 차례 인용해 널리 알려졌다.

신라가 백제의 장인(匠人) 아비지를 초청해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운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백제는 건축이나 공예 등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정작 이를 입증할 만한 유물은 많지 않았다. 
1993년 12월 12일 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 인근에서 발견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일제강점기부터 금관총 유물이나 석굴암 등이 세인의 주목을 끈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백제 미술은 해방 후 현대에 들어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내뿜었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1959년에야 세상에 알려졌고, 1965년에는 익산 왕궁리 미륵사지 오층석탑을 해체하다가 기단부 사리함에서 금동여래입상과 청동방울 등을 발견했다.

1971년 무령왕릉에서 수많은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나온 데 이어 1993년에는 금동대향로가 기적처럼 빛을 봤다.

부여의 한 문화해설사는 이를 두고 “백제는 세상 사람이 잊을 만하면 깜짝 놀랄 유물을 내보이며 가치를 일깨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년 전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될 당시의 모습.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채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백제 예술의 극치이자 정수, 국보 중의 국보로 꼽히는 금동대향로가 30년 전 세상에 나온 과정은 이렇다.

충남 부여군 능산리에는 백제 왕족의 무덤이 모여 있다.

주차장을 만들려고 유물 발견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계단식 논을 골라 사전 시굴조사를 하니 건물 터와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됐다. 결정적인 유물·유구는 나오지 않아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될 형편이었다.  

미련이 남은 발굴단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파본 뒤 조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1993년 12월 12일 오후 4시 30분 진흙 속에서 금속 물체가 보였다.

긴장한 발굴단은 소문이 날 것을 우려해 인부들을 모두 귀가시키고 꽃삽과 손으로 조심스럽게 진흙을 걷어냈다.

4시간 후 높이 62.5㎝, 무게 11.8㎏의 금동대향로가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뚜껑 맨 위에는 봉황 닮은 새가 양날개를 편 채 서 있고 둘레에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산봉우리, 신선, 각종 동물이 새겨졌다. 몸체는 신선과 동물이 담긴 연꽃잎으로 장식됐으며 그 아래 용틀임하는 용이 떠받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능산리 고분군.(부여군청 제공)  

조형적으로 완벽한 예술품이 발견되자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산과 신선 등 도교적 색채가 가미된 데다 한나라 때 중국에서 유행하던 박산로(博山爐)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산로는 크기가 훨씬 작고 남북조 시대에는 금동으로 만든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학계에서는 중국 제작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추가 발굴을 통해 출토지가 사찰 공방 자리였음이 확인된 데 이어 1995년 석조사리감에서 ‘서기 567년 매형공주가 금동대향로를 공양했다’는 글씨가 발견돼 사실상 논쟁이 끝났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과 사료를 토대로 금동대향로가 만들어진 배경과 땅속에 묻히게 된 사정을 추정해보면 이렇다.  

성왕의 아들 위덕왕은 아버지 성왕의 넋을 달래고자 왕실 전용 사찰을 지었고, 위덕왕 누이 매형공주가 사리를 만들어 바쳤다. 금동대향로도 여기에 딸린 공방에서 만들어져 법회나 제사 때마다 향기로운 연기를 피워냈다.

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스님들은 향로를 비단에 싼 뒤 물통 속에 감춰두고 도망쳤다. 백제가 멸망할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하고, 며칠 뒤에 찾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나당연합군에 의해 절 전각과 요사채는 모두 불타고 폐허가 됐다. 향로가 담긴 물통도 흙에 묻혔다.

1333년 만에 잠에서 깬 백제금동대향로는 진흙 속에 잠겨 있어 흠집 하나 없고 녹도 슬지 않은 온전한 모습이었다. 긴 세월 탓에 비록 황금빛 광채는 바래고 섬세한 외곽선도 무뎌졌지만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금속공예품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지난 8~1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다운타운디자인에서 선보인 김준용의 유리공예 작품 'Dusk'. 

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5일 백제문화재단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9월 23일부터 내년 2월 12일까지 ‘백제금동대향로3.0-향을 사르다'라는 주제 아래 특별전을 열고 있고, 지난 4일에는 국악 콘서트 ’향연‘도 펼쳤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백제 미학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 예술의 기본 정신이었다. 금동대향로는 백제 미학의 결정체이자 한국 공예의 원류를 이룬다.

최근 들어 이른바 K공예도 한류 열풍에 가세해 세계인의 각광을 받고 있다. 말총(말 꼬리털) 공예작가 정다혜는 지난해 3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스페인 로에베 공예상을 차지한 여세를 몰아 올 5월 영국 런던 크래프트 위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에 열리는 한국공예전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바이어와 관람객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분야별 대표작가 20명이 도자·금속·나무·유리·옻칠·낙화 등 65점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지 2년 만인 1995년 절터 목탑지 밑에서 석조사리감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서기 567년 백제 위덕왕 누이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지난 지난 8~1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다운타운디자인에는 2018년 로에베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오른 유리공예가 김준용과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한 달항아리 작가 류지안 등 한국 대표 공예가 6명이 26점을 출품해 탄성을 자아냈다. 내년에 UAE에 들어설 ’K-브랜드 해외홍보관‘에도 공예 상설전시관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인의 손재주와 미적 감각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예술을 잡기로 여기고 장인을 천대하는 풍조 탓에 한국 공예의 전통은 한동안 맥이 끊기거나 긴 침체기를 보냈다.
  
1400여 년 전 금동대향로를 만든 백제 장인들의 예술혼을 오늘날 되살린다면 샤넬이나 에르메스나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를 우리라고 못 만들어낼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이희용
연합뉴스에서 대중문화팀장, 엔터테인먼트부장, 미디어전략팀장, 미디어과학부장, 재외동포부장, 한민족뉴스부장, 한민족센터 부본부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이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세계시민교과서’ 등이 있다.hoprave@gmail.com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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