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밑 빠진 독’을 들고 대통령실 앞에 모였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필수의료·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의협 각 시·도 의사회장 등 범대위 40명 가량이 참석했다.
범대위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 보단 최소 11년에서 14년 후 배출될 의사 수 증원에만 관심을 가지고 의대 정원 증원을 졸속으로 추진하려 하는데,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의대정원 증원 추진은 의료비 부담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형상화했다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의대 증원 졸속 추진’, ‘무분별한 의사 증원’이라고 쓰인 양동이에 담긴 물을 ‘건보재정 파탄’이라 적힌 항아리에 부었다. 밑이 깨진 독에서 새어나온 물은 의대 증원으로 인해 빠져나가는 건강보험 재정을 의미한다고 범대위는 설명했다.
범대위는 이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어떠한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의협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우리나라가 처한 보건의료체계 현실에는 눈을 감는 정부의 독단적인 행동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13만 회원과 함께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막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외쳤다.
한동우 서울시 25개구 의사회 대표회장(구로구의사회장)은 “무분별한 의사 수의 증가는 국민들에게는 막대한 의료비의 증가와 이에 따른 의료보험료 납부금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방에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환자 수가 부족하다”며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 구색을 맞추기 위한 의사 배분은 비효율적”이라고 질타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병리학교실 교수인 홍순원 한국여자의사회 차기 회장은 “의대 교수로서 답답한 심정”이라며 “기본적인 인프라와 재정이 확보되지 않은 채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면 의학 교육의 질은 엄청나게 저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 교육은 강의실에 책걸상을 추가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기초 및 임상실습 교육 여건이 제대로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감행할 경우, 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도 했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만약 의료계 파업 사태로 국민 피해자가 나오면 그 책임은 바로 이 앞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출생아 수가 감소한 만큼 의대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70년도엔 출생아가 100만명이었다. 작년 연간 출생아 수는 25만명으로, 75%가 줄었다”면서 “출생아 수 100만명 시대에 의대 정원이 3000명이다. 75%가 줄면 의대 정원도 그에 맞게 줄여야 비례 원칙에 맞는 것”이라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