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사망 사례 등이 발생하면 법정 최고형까지 갈 수 있다.” (보건복지부)
“명령에 불응했다고 해서 의사들을 감옥에 보내는 게 타당한가. 대형로펌과 의료계 간 계약관계를 맺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법적 다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전공의들이 ‘개인 사유’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을, 정부가 ‘면허 취소’ 등 법적 조치로 막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 주요 대형병원인 빅5 병원 전공의들이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일부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은 이미 시작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 기준 23개 병원에서 7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근거는 ‘의료법 제59조’다. 이 조항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집단으로 휴·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예상되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령에 불응할 경우 면허는 박탈될 수 있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피하기 위해 ‘집단 휴진’ 대신 ‘개별 사직서 제출’ 방식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지난 15일 “우울감, 의료 소송 두려움, 과도한 근무 시간, 낮은 임금 등을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하겠다”며 “20일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전공의가 개인적 사유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도, 정부의 의도대로 면허를 취소할 수 있을까. 의료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 △더프렌즈 법률사무소 이동찬 변호사, 그리고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익명을 요청한 A 변호사에게 쟁점 3가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① 개별 사직서 제출을 ‘진료 거부’로 볼 수 있나
일신상의 이유나 건강 문제 같은 개인적 사유의 사직도 진료 거부로 보고,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가 일을 그만둘 자유까지 침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동찬 변호사(X)= “진료 거부는 병원에 찾아온 환자를 거절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의사가 앞으로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것을 진료 거부로 볼 수 있는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의사를 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은 아니다.”
정혜승 변호사(X)= “진료 거부 행위로 볼 수 없다. 환자가 특정 전공의에게 진료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해당 병원에 의사가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전공의가 일을 관두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종사시킬 수도 없다고 본다.”
A 변호사(O)= “개별적 사유라고 해도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긴 힘들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 움직임이 있는 특정 시기에 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개별 사직할 확률은 낮지 않나. 전공의들이 그만두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입증해야 한다.”
② 업무개시명령 불응하면 ‘면허 취소’ 될까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어기고 현장에 복귀하지 않을 시 ‘면허 자격정지’ 처분(의료법 제66조)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의료법 제88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도 처할 수 있다.
이동찬 변호사(X)= “면허 취소 사유가 있어야 면허를 박탈할 수 있는데, 진료 거부의 경우 업무개시명령만 내릴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했을 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라 ‘업무정지 15일’ 뿐이다. 업무정지 15일은 의료기관에 내리는 것이라, 의사 개인은 제재할 수 없다.”
정혜승 변호사(-)=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해 형사 책임이 발생해서 유죄가 선고되면 그때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다만 복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공정거래법 위반, 업무방해 등으로 소송을 걸 수 있고 이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면허 취소까지 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③ 사직서 수리 안 되면 ‘30일 뒤’ 복귀명령 통하나
정부는 각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수리될 경우 업무개시명령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민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의 퇴사 요청을 거부해도 30일 뒤엔 강제 근로를 시킬 수 없다. 한 달 뒤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에 복귀해야 할 의무가 사라지는지도 쟁점이다.
정혜승 변호사(X)= “수련 계약서에 계약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 민법에 따른다. 민법에는 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아도 한 달 뒤엔 효력이 생긴다고 명시돼 있다. 한 달이 지나면 업무개시명령도 통하지 않는다.”
A 변호사(-)= “수련 계약도 일반적인 근로계약처럼 서면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 달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돼있다. 근로자가 퇴사하겠다고 하는데, 계속해서 근무를 강제하긴 어렵다. 다만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해 병원과 환자에 피해를 준다면 사직서 제출 자체를 무효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법 질서는 선량한 사회 풍속에 반하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법 질서에 반하기 때문에 사직서 효력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