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북본부 데스크칼럼 <편집자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현안들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격려할 것은 뜨겁게 격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전라북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총선이 채 50일도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 획정안이 이제야 국회 본회의에 오를 전망이다. 여야가 당리당략으로 지루한 샅바싸움을 하면서 공직선거법상 획정 시한(총선 1년 전)을 넘긴 지 오래고 총선 직전까지 끌고 가는 고질적 병폐가 재연됐다.
선거구 획정은 선거에 앞서 선거구 경계를 정하는 일로 총선 주기인 4년간의 인구 변동을 반영해 선거구를 통폐합하거나 분구·신설한다. 이번에는 전체 300석 가운데 비례 47석을 제외한 253개 지역구가 대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인구 상한선을 넘은 6곳의 분구, 인구 하한선에 못 미친 6곳의 합구, 지역구·경계 조정 20곳 등의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서울과 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과 경기에서 1석씩 늘리는 획정안인데 국민의힘은 선거구획정위 안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입장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텃밭인 서울 강남 3개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서울 노원 지역구 현행 3곳을 2곳으로 줄이고 민주당 우세 지역인 전북에서 1석을 줄이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해 왔었다.
여야는 26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와 29일 본회의를 앞두고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막판 수 싸움을 벌일 전망이나 민주당이 획정위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여당에 전격 전달해 파문이 일고 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에 획정위 원안을 그대로 받아서 29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고 확인했다.
여야는 그간 물밑 협상에서 합의한 사항은 ▲서울 종로구와 중·성동갑, 중·성동을로 나눠진 현행 지역구 유지 ▲강원도는 춘천을 비롯한 8개 선거구 현행 유지 ▲경기 양주는 동두천·연천에 붙이면서 갑·을로 나누기 ▲전남 순천·광양 현행 유지 등 4가지 특례안인데 국민의힘은 합의 특례안 조차 거부한 민주당에 반발하고 있다.
획정위 원안대로 본회의에서 의결하면 강원도는 현행 8석을 유지하나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강릉·양양으로 지역구를 재편돼 8개 중 4개 선거구가 ‘헤쳐모여’ 형태가 될 뿐 아니라, 서울 면적의 8배 규모이자 강원 전체 면적 30%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공룡 선거구’(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가 탄생한다.
여야 선거구 협상에서 최대 쟁점은 ‘전북 1석 축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텃밭' 전북에서 1석을 줄이는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며 부산을 1석 줄이자고 했고 여당은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이 계속 주장하자 국민의힘은 '당신들이 필요하면 비례 의석을 1석 줄여서라도 전북 지역구를 1석 늘리라'고 했다는데 이는 민주당이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전북은 결국 국회의원 의석수 1석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전북 총선판은 대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총선에 나설 후보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선거운동 전략을 하루아침에 대폭 수정해야 하고, 현역 의원과 현역 의원이 맞붙게 되는 기형적 선거구가 탄생할 수도 있다.
전북 지역구가 1석 줄어든다면 도내 지역구는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거의 없게 된다. 전주와 익산을 비롯해 많은 선거구의 분구와 합구, 경계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특히 4곳 선거구 유권자는 기존에 투표했던 지역이 아닌 변경된 지역 후보에게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며, 후보들은 새로운 선거구에서 선거운동을 벌여야 한다.
먼저 정읍·고창 선거구는 정읍·순창·고창·부안 선거구로, 순창과 부안 선거구가 합구돼 새로운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남원·임실·순창 선거구 역시 남원을 제외한 임실·순창이 떨어져 나가고 진안·무주·장수가 합구되면서 남원·진안·무주·장수 선거구로 재편된다.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선거구는 현재의 완주·진안·무주·장수 지역구로 김제·완주·임실 선거구로 변경돼 완주·진안·무주·장수 지역의 안호영 의원과 김제·부안의 이원택 의원이 격돌하게 돼 공천 과정부터 소지역주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여러 차례 심사를 통해 공천자와 경선지역을 발표했지만 전북은 익산갑만 경선지역으로 발표한 뒤 나머지 9개 선거구에 대해서는 발표를 늦추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결국 전북이 또 당하는 모양새가 되었다고 비난한다.
임혁백 민주당 공관위원장은 “민주당 공천은 시스템 공천이기 때문에 정식 절차를 밟고 면접하고 일정에 따라 예정대로 심사가 진행한다”면서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서 분구·합구 등 대상 지역은 심사할 수 없다고 밝혀 민주당 속내에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전북 6곳 선거구에 후보를 단수추천해 본격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전북 정치권은 그동안 ‘전북 10석 지키기’와 관련해 침묵해 왔다. 현역 의원들이 민주당의 현역 하위 20% 통보와 컷오프에 모든 신경이 집중하다 보니 의석수 감소는 뒤로 한 채 ‘각자도생’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 중앙당 비위를 거슬려 공천에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누구 하나 지역구 10석을 주장하는 의원이 없다.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다 보니 표를 주는 유권자를 무서워해야 할 선거가 오히려 중앙당을 무서워하고 눈치 보는 선거로 바뀌는 모양새가 되었고 ‘민주당의 오만함’이 지역 정치를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선거구 획정 지연과 막판 지역구 조정은 유권자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예비후보자를 혼란에 빠트리는 행위다. 이름이 알려진 현역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할지 모르지만 자신을 제대로 선거구민에게 알려야 할 정치신인에겐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전북은 한때 국회 의석을 24석까지 보유했었다. 4~5대 국회에서 24석을 유지하다 16대에 10석으로 확 줄었고 이후 11석과 10석을 오갔으나 내년 22대 총선에서는 9석으로 쪼그라드는 처지에 처하게 됐다.
국회 의석수 감소는 지역의 정치력마저 위축되는 결과를 낳고 정치적 발언권 축소나 다름없다. 새만금 SOC 예산 삭감에 이어 노골적인 전북 홀대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고도 저항하지 않는 기존 의원들의 자질과 역량이 의심스럽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더 없이 중요해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