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실종, 남은 건 ‘로기완’ 수난사뿐 [쿡리뷰]

로맨스 실종, 남은 건 ‘로기완’ 수난사뿐 [쿡리뷰]

기사승인 2024-02-27 22:00:02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탈북자 로기완(송중기)은 벨기에에서 새 삶을 꿈꾼다. 정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전까진 노숙자로 살아야 하는 처지. 어느 날 그는 목숨보다도 귀한 제 지갑을 훔쳤던 마리(최성은)와 마주한다. 이를 기점으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삶에 얽혀 들어간다.

오는 3월1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은 한 마디로 고루하다. 사랑에 빠지는 계기와 과정이 지나치게 예스럽고, 기완과 마리는 세상 불행을 혼자 짊어진 듯 울적하다. 구태의연한 전개 속에서 두 주인공은 마땅한 당위성 없이 서로를 사랑한다. 이야기와 감정들이 동떨어진 상황에서 전개 속도마저도 오리배처럼 더디게 흘러간다.

기완에겐 불행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다. 포션 버터로 끼니를 해결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공병을 수거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길거리에 있는 불을 쬔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엄동설한에 물에 빠진 신발을 주우려다 강에 몸을 적신다. 어머니와의 서사 역시 안쓰럽다. 벨기에에서의 궁핍한 생존기와 탈북 후 중국에서 쫓기던 처지가 강약조절 없이 초반 20~30분 내내 쏟아진다. 그 내용이 워낙 고되다 보니 극에 감정적 동화는커녕 보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린다. 반면 마리는 끝없이 방황한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는 로그라인에 걸맞게 제 자신을 망치지 못해 안달이지만, 그 이유로 제시된 사건이 그의 기행을 크게 납득시키진 못한다. 기완의 처지에 비하면 마리의 방황은 배부른 이의 자기 연민으로만 느껴진다.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개연성이 결여된 각본이 아쉬움을 남긴다. 마리와 얽힌 모든 이가 그를 가지지 못해 안달인 것도, 기완과 마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와닿지 않는다. 감정 흐름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채 인물들의 관계만 심화돼 몰입감이 떨어진다. 기완과 마리의 사랑놀음에 벨기에 갱단, 베를린 마피아까지 동원되는 것 역시 당황스럽다. 진한 아이라인을 고수하던 마리가 기완과 사귀고 화장기 없는 ‘독기 빠진’ 얼굴이 된 묘사 역시 평면적이다. 사랑에 미친 기완의 결단 또한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갑자기 서로에게 목숨을 거는 기완과 마리의 변화도 당황스럽다. 앞뒤 꽉 막힌 해피엔딩을 선사하려는 노력만은 눈에 띈다. 

배우들의 연기는 볼 만하다. 특별출연한 서현우와 기완의 어머니를 연기한 김성령, 그의 조력자 이상희가 돋보인다. 마성의 매력을 연기하기 위해 제 몫을 다하는 최성은과 북한 사투리를 소화하려 애쓰는 송중기의 노력은 가상하다. 다만 얄팍한 서사가 배우들의 고군분투를 무력화한다. 로맨스 장르를 표방하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는 건 초반부에 질리도록 나온 기완의 수난기다. 오는 3월1일 공개. 청소년 관람 불가. 상영시간 131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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