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LCK 서머, 한 아나운서가 LCK 팬들에게 첫인사를 했다. 밝은 표정과 정확한 발음, 경기를 보는 시선까지. 신입 아나운서답지 않은 모습은 곧바로 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수빈 아나운서와 LCK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해 LCK 데뷔 3주년을 맞이한 윤 아나운서는 LCK 역대 아나운서 최장기간 근속 기록을 세웠다.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LCK 아나운서’ 하면 ‘윤수빈’이 떠오를 만큼, 윤 아나운서는 LCK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쿠키뉴스는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2024 LCK 스프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윤수빈 아나운서를 만났다.
“처음에는 울면서 공부했어요”…뉴스 아나운서를 꿈꿨던 소녀
꿈 많던 대구 소녀는 사투리 때문에 아나운서를 꿈꾸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넘치는 끼는 그를 자연스럽게 아나운서의 길로 이끌었다. 윤 아나운서는 “대학 진학 후 주변에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아나운서를 희망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처음에 시사‧정치 프로그램 아나운서를 꿈꿨다는 윤 아나운서는 “뉴스나 토론을 진행하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스포츠 아나운서가 된 게 너무 잘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웃어 보였다.
그렇게 자리 잡은 LCK에서 윤 아나운서는 햇수로 5년 차, ‘역대 최장수 아나운서’ 타이틀을 얻었다. 지금은 밴픽 분석도 일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윤 아나운서는 “5년 동안 모든 경기를 봤다. 옆에 분석가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웠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딱 맞다”면서 “경기 흐름이 어떤지 스스로 판단이 가능하다. 이 판단을 분석가들이랑 상의한 다음, 방송에서 언급한다. 물론 틀릴 때도 많다(웃음)”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롤을 잘 몰랐던 초창기엔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윤 아나운서는 “용어가 어려워 처음엔 진짜 울면서 공부했다. 해설 내용을 수기로 다 받아적고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봤다. 2년 정도 지난 후에야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전엔 너무 힘들었다”며 “작은 실수들이 많았다. 정글과 서폿 마크를 헷갈렸다. ‘쿠로’ 이서행과 ‘고릴라’ 강범현의 이름도 바꿔 불렀다. 선수들 말을 못 알아들은 경험도 있다”고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봤다.
롤에 진심이 된 ‘꽉수빈’
힘든 시기도 잠시, 롤과 사랑에 빠진 윤 아나운서는 이제 롤을 직접 즐기는 한 명의 유저가 됐다. 솔로랭크 브론즈 티어라고 당당하게 밝힌 윤 아나운서는 “(티어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아이언에서 브론즈로 승급했다. 아이언에서 탈출하기 힘들었다. 그 어려운 걸 해냈다”고 여느 롤 유저와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라인은 미드. 윤 아나운서는 “아이언을 미드로 탈출했다. 처음 서포터와 탑을 할 때 생각보다 내가 너무 잘하더라(웃음). 하지만 포지션 특성상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기 어려웠다”면서 “잘하는데 지니까 너무 억울해서 미드로 포지션 변경했다. 변경 후 승률 50%가 넘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벡스 장인이다. 가끔 직스나 럭스, 세라핀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베이가를 연습 중이다. 아리도 해봤는데 (내가) 너무 못하더라. 궁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고 설명을 이어간 윤 아나운서는 “원래는 탑 레넥톤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유틸 서포터나 원거리 스킬이 있는 챔피언을 선호한다”고 말하며 넓은 챔피언 폭을 자랑했다.
롤에 대한 사랑은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개인 유튜브 채널 ‘꽉수빈’을 운영하는 윤 아나운서는 재밌는 롤 컨텐츠로 구독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 선수들이 나와 자신의 애장품을 드러내는 ‘전당포’ 컨텐츠를 선보였다. 윤 아나운서는 “전당포 컨텐츠에서는 레전드 선수들의 선수 시절을 돌아볼 수 있다. 인터뷰 다음날(16일) 새로운 게스트도 등장한다”고 살짝 귀띔했다.
LCK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윤 아나운서는 2022~2023시즌부터 WKBL(여자프로농구) ‘아이 러브 바스켓볼’ 프로그램을 맡아 활약 중이다. 이외에도 eK리그(FC온라인 대회) 메인 아나운서를 맡으며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새로운 도전에 고민은 없었을까. 윤 아나운서는 “제안받아서 너무 좋았다. 원래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LCK 아나운서를 하면서 스포츠의 묘미를 알게 됐다. 왜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지 알겠다”며 “축구나 농구는 롤보다 좀 더 직관적이라 공부하기에 편했다.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돌아봤다.
특히 윤 아나운서의 마음을 사로 잡은 건 농구다. 최근 직관도 했다는 윤 아나운서는 “현장에서 보니 중계로 보는 것보다 템포가 훨씬 더 빨라 매력적이었다. 농구화가 코트에 닿는 ‘찌직 찌직’ 소리도 너무 좋다. 버저비터의 짜릿함도 소름 돋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윤수빈에게 롤이란…“삶, 그 자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있었냐고 묻자, 윤 아나운서는 주저 하지 않고 “LCK 중계를 시작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윤 아나운서는 “LCK 중계를 시작한 이후부터 인생이 바뀌었다. 뉴스를 하고 싶어했던 아나운서 지망생이 LCK에서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게됐다. LCK를 맡게 됐던 그 순간은 죽을 때까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남을 것”이라며 “롤은 삶 그 자체다. 롤과 나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 아나운서는 끝으로 팬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LCK 최장수 아나운서로서 이렇게 인터뷰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팬들 덕이다.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너무 감사하다. 내 장점 중 하나가 ‘성실함’이다. 앞으로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윤수빈이 되겠다. 잘 지켜봐달라.”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