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저축은행 업계에 자산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500억원대 순이익에서 1000억원대 순손실로 적자 전환한 페퍼저축은행도 우려의 대상이다. 페퍼저축은행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982년 설립된 한주상호신용금고를 전신으로 한다. 2002년 안산상호저축은행, 2005년 늘푸른상호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바꿨다. 2010년 웅진금융제일유한회사가 지분 100%를 인수하며 대주주가 됐지만, 2013년 10월 호주 페퍼그룹 계열사인 PSB 인베스트먼트 홀딩스가 다시 지분을 100% 인수하며 새 주인이 됐다. 이후 한울저축은행을 인수 합병하며 상호를 페퍼저축은행으로 다시 바꿨다.
2017년 글로벌 사모펀드 KKR이 페퍼그룹를 인수하면서 페퍼저축은행의 지배구조가 다시 달라졌다. 이후 KKR은 페퍼저축은행의 지분 100%를 PSB 인베스트먼트 홀딩스에서 페퍼유럽에 넘기며 새로운 대주주로 내세웠다. 현재도 페퍼저축은행의 보통주 100%를 페퍼유럽이 보유하고 있다. 페퍼그룹 인수와 함께 2013년 취임한 장 매튜 대표이사가 현재까지 페퍼저축은행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1072억원 순손실…건전성 지표도 위험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연체율·고정이하여신비율 등 건전성 지표도 위험한 수준까지 악화됐다. 신용등급은 ‘BBB-’로 떨어졌으며, 총자산 규모도 줄어들어 저축은행 업계 6위로 밀려났다.
25일 금감원 경영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페퍼저축은행의 당기순손실은 1072억원으로 2022년 순이익 513억원에서 적자로 전환했다. 1년 만에 당기순이익 1500억원이 감소하며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지난해 저축은행 79개사 전체 순손실 5559억원 중 19.3%가 페퍼저축은행의 순손실이었다. 페퍼저축은행은 경영공시를 통해 ‘이자비용 및 대손상각비 등 증가와 이자수익 감소’를 순손실 이유로 들었다.
대규모 순손실과 함께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들도 위험한 수준이다. 지난해말 페퍼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NPL)은 12.9%로 치솟았다. 2022년 4.7%에서 3배 가까이 상승한 결과로,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 평균 8.8%보다 4% 이상 높은 수치다. 연체율도 2022년 4.1%에서 2023년 9.39%로 2배 이상 높아졌다.
최근 업계에 위기감이 높은 부동산 PF 대출의 건전성도 우려되는 수준이다. 페퍼저축은행이 보유한 지난해말 부동산 PF 신용공여액은 2387억원으로 전체 대출금 3조6009억원 중 높은 비율은 아니다. 다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13.2%, 고정이하여신비율은 9.0%로 높은 편이다. 정상여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39.6%로 전년 68.6%에 비해 줄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신규대출을 중단했다. 이에 자산이 2022년말 6조2554억원에서 4조7189억원까지 24.6% 줄었다. 결국 지난해말 자산 5조3418억원인 애큐온저축은행에게 저축은행 자산순위 5위 자리를 내주고 6위로 밀려났다. 페퍼저축은행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축은행 자산규모 5위권을 지켜왔다.
페퍼저축은행 측은 지난해 발생한 순손실에 대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조달비용 급증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인사업자 주담대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한 영향”이라며 “외부 경제 환경의 부정적 변화가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6~2022년 2247억원의 순익이 발생했고, 자본도 지난해말 3644억원에 달해 이번 손실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며 “올해 기준금리가 안정화되고 있고 부동산 경기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어 실적도 점차 개선세를 보일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은 페퍼그룹으로부터 지난해 5월 200억원, 지난달 100억원을 유상증자를 통해 지원받기도 했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모기업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신용등급 ‘BBB-’로 하락…작업대출·횡령 제재
지난 15일 나이스신용평가사는 페퍼저축은행의 장기신용등급을 기존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내렸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조달비용 및 대손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크게 저하된 점을 페퍼저축은행의 장기신용등급 하향 조정 이유로 설명했다. 개인신용대출 연체율이 상승했고 개인사업자 담보대출의 건전성 저하 등 대손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도 원인이었다. 나이스신용평가사는 보고서를 통해 “페퍼저축은행의 작년 말 BIS자본비율은 11.0%로 경쟁사 대비 열위한 수준”이라며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가운데 (페퍼그룹에 대한)높은 수준의 배당성향이 유지된 점은 자본적정성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12월 보통주와 우선주 1주당 1만2530원의 중간배당을 지급해 총액 681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이번 배당은 이전 배당처럼 주주 환원 목적이 아닌 재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선주를 상환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보통주를 보유한 모기업(페퍼유로)이 페퍼저축은행의 재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선주를 보유한 파인트리와 우선주 일부 상환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며 “페퍼저축은행이 일부 상환 금액을 배당 형태로 모기업에 지급하고 이를 우선주 상환에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페퍼저축은행은 내부통제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해 6월 페퍼저축은행과 SBI·OK·애큐온·OSB 등 저축은행에서 1조2000억원의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을 부당취급한 사실에 대해 금감원이 제재조치를 내린 것이다. 사업자금이 아닌 가계 주택담보대출 상환 등 편법으로 사용될 것 알면서도 대출 심사와 분석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다. 페퍼저축은행은 사업자 주택담보대출 부당취급 금액이 162억3400만원에 달해 기관경고를 받았다. 기관경고는 1년간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는 중징계다.
또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11월 신용공여 규제 위반과 자금 횡령 등으로 과태료 7100만원과 과징금 1100만원을 부과받았다. 임직원 배우자에게 신용공여가 금지됐음에도 두 차례에 걸쳐 2300만원의 대출을 취급한 사건과, 임직원이 중도상환 수수료와 대출모집 수수료를 본인, 가족 명의 계좌로 송금하는 방법으로 2억9100만원을 횡령한 사건이 문책 대상이었다. 또 총자산이 급격히 확대되며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2019년말 13.0%에서 2022년 3월 10.4%로 하락했음에도 관리 방안 및 자본확충 계획 등을 마련하지 않았고,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저축은행 평균 대비 낮은 점을 경영유의사항으로 지적받았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