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김근배 교수(자연대 과학학과) 등 연구진들이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화학자인 리용규(1881~미상), 최근 타계한 위상수학의 권위자 권경환(1929~2024), 우리나라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1936~2002),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최초의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 김삼순(1909~2001) 등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우리나라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김근배 교수팀의 연구진이 15년에 걸친 아카이브 작업을 바탕으로 총 6권으로 기획된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시리즈의 첫 결실로, 역사 속에 묻힌 근현대 한국 과학기술인들의 삶과 자취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발굴된 근현대 과학기술인은 모두 30명. 한국의 첫 화학자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일환으로 만년필용 모란잉크를 개발한 리용규, 세계 최초로 비타민E 결정체 추출에 성공해 한국인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김량하(1901~미상), 해방 직후 남대문 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미국수학회보’에 실린 미해결 문제를 풀어 논문을 발표한 수학자 리림학(1922~2005), 한국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아 느타리버섯 인공 재배에 성공한 김삼순 등 과학자들의 노고가 담겨 있다.
두만강 유역의 모래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해 동아시아에는 다이아몬드가 없다는 통념을 뒤집은 지질학자 박동길, 일본에 양자화학을 처음 도입한 세계적인 화학자 이태규, 한국인 집단 유전학 연구로 일찍이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잇달아 논문을 발표한 강영선 등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활동한 한국의 선구적인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의 기원도 이 책에 담겼다. 1930년대 후반에 많은 동식물의 우리말 이름이 지어졌고, 한글날은 음력과 양력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등 복잡한 논의 끝에 10월 9일로 결정됐다. 해방 후 조선산악회의 시민식목등산회 개최는 1949년 식목일 제정으로 이어졌고, 1978년에는 식물학자 이민재와 이은상, 이숭녕이 초안을 작성한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됐다.
특히 이 책에서 언급된 30인의 과학자 중 전북지역과 관련된 과학자도 3명이 조명되고 있다. 전주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뛰어난 생물학자로 양성한 입지전적인 어류생태학자 최기철(서울대), 군산 태생으로 군산고를 졸업하고 46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논문왕’ 수학자 박세희(서울대), 전주북중과 전주고를 나와 서울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노벨과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화학자 심상철(카이스트) 등이다.
집필에는 전북대 김근배 교수와 공동 편저자인 이은경, 선유정 교수를 비롯해 10여명의 과학사학자가 참여했다. 미생물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 학부 전공이 각기 다른 저자들은 논문, 저서, 기고와 기사, 회고록, 정부 문건 등 다양한 자료를 살피고, 교차 검증을 통해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회고록과 기고·기사 중 일부는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글로 만날 수 있도록 발췌해 실었다. 참고자료 목록은 후속 연구자를 위해 책에 그대로 수록됐다.
전주=김영재 기자 jump0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