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는 부처인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관건은 다양한 부처에 흩어진 저출생 관련 정책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 평가하느냐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된 정책을 내놓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는 저출생 극복에 사활을 걸었다. 정치권도 거들고 있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2명으로 2022년 0.78명보다 더 낮아졌다. 올해는 0.68명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분기 출산율은 지난해 4분기 0.65명으로 사상 처음 0.6명대로 내려앉았다.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합계출산율은 1.49명으로, 1명에도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한국의 2050년 국내총생산(GDP)이 28.38%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윤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통해 교육, 노동, 복지, 주거 등 각 영역에서 저출생 대응 정책을 이끌어갈 부처를 신설하겠단 구상을 제시했다. 저출생 문제를 관할할 부처 신설은 지난 4·10 총선에서 여야가 공통으로 내놓은 공약이기도 하다. 새 부처가 만들어지면 사회부총리는 기존 교육부 장관이 아닌 저출생대응기획부 장관이 맡아 수행하게 된다. 대통령실에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담당할 저출생수석실도 마련한다. 현재 수석 인선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며 다음 달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정부의 저출생 대응은 각 부처별로 추진하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정책 개발과 부처 간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정부는 저고위를 중심으로 2006년부터 5년 주기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 지난 2020년 4차 기본계획까지 발표했다. 다음 기본계획은 올 상반기 중에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그간 저고위를 둘러싼 논란과 한계점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됐다. 설립 의도와 달리 각 부처의 정책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각 부처는 물론 중앙과 지방을 연계하는 역량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기능하고 있어 독자적 인구정책을 기획해 집행할 권한이 없고, 법률 제정권과 예산 집행권을 갖지 못한 자문기구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속 공무원 중 70%가 파견직이라 부처 사업을 총괄하기엔 힘이 부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4월16일 발표한 ‘인구감소 시대, 인구 전담 부처 설치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저고위는 정부의 종합적 저출산 대응을 목표로 시작됐지만, 자문위원회라는 조직 특성의 한계로 인해 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인구정책 전담 부처를 신설할 경우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과 업무 분장이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일자리, 주거, 돌봄 등 저출생 관련 문제 중 특히 맞벌이 부부와 관련된 돌봄은 고용부 역할이 크다”며 “복지부는 저고위 간사 부서이고 부처 내 인구정책실이 있다. (저출생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다른 부처 일을 총괄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저출생대응기획부라는 구상을 밝히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안부가 관련 안을 짜고 있을 텐데 구체적으로 의견 교환을 한 적은 없다”면서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 과정에서 보육정책관실을 과감하게 교육부에 이관한 것처럼 저출생대응기획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하다면 조직 이관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각 부처의 저출생 관련 부서와 사업을 저출생대응기획부에 몰아넣는 방안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 대응을 위해 법·예산 집행 기능을 갖춘 힘 있는 부처를 출범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각 부처에 있는 관련 부서와 사업을 한꺼번에 모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저출생대응기획부가 해야 할 역할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각 부처의 정책 효용성을 살펴 평가하고 알맞게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다음 정부에 들어서야 저출생대응기획부의 토대가 세워지고 기능이 갖춰질 것이라고도 했다. 설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 출범하더라도 성공적 안착은 다음 정부의 손에 달렸다”며 “현금성 정책을 많이 푸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잘 분석해 시민들의 정책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생 대응 과정에서 새로운 부처를 출범하는 것보다 기존 부처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부처별 저출생 사업들을 다 떼어서 저출생대응기획부 한곳으로 묶는 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잘못 기능할 위험이 높다”며 “영국이나 스웨덴 등 해외의 경우 복지부 장관이 여러 명이다. 차라리 복지부 장관이 사회부총리 역할을 맡게 해 기존 부처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