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계 집단휴진을 앞두고 초강수를 뒀다.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사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고, 이를 방치한 병원에 건강보험 선지급 제한 방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경대응 기조가 의도한 대로 집단휴진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지, 의료계를 자극하는 부작용만 키울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17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대병원의 휴진을 시작으로 오는 18일 대한의사협회 총궐기대회가 열리고 이에 맞춰 각 대형병원과 동네 병·의원들이 진료를 접는다. 27일에는 세브란스병원 휴진이 예고돼 있다.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휴진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단 입장이다. 지난 16일 각 대학병원장에게 일부 교수들의 집단 진료 거부가 장기화돼 병원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구상권 청구 검토를 요청했다. 또 병원에서 소속 교수들의 집단 진료 거부 상황을 방치한다면, 건강보험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의사 개인과 병원 모두 직접적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조치인 만큼 상당한 강격책으로 풀이된다.
18일 휴진에 나서는 개원의를 향해서도 공정거래법 위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심지어 의협이 이번 총파업에 개별 사업자인 개원의를 동원했다고 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사업자단체금지행위 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단체가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각 사업자의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의협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에 해당한다.
다만 정부의 초강경 기조에도 의료계의 파업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예고했던 대로 18일 범 의료계 집단휴진을 하고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며 “지난 4개월 동안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 휴진 이외의 모든 노력을 외면했다. 정부의 폭정을 막을 방법은 단체 행동 밖에 없음을 국민 여러분들도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의료현장에서도 법적 대응 압박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전공의에 대한 법적 처벌을 철회한 것처럼 이번에도 원칙을 꺾지 않겠냐는 예측에서다. 그간 의료현장을 지켜온 교수급 의료진에 대해 강경책을 내놓은 것에 대한 반발 심리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A대학병원 교수는 1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공의한테도 법적 최고형을 운운하다 철회하지 않았나. 하물며 전공의 이탈 뒤 4개월 동안 의료현장을 지킨 교수들한테 구상권 청구를 언급한 것 자체에 대해 분개하는 분위기”라며 “교수들을 감정적으로 자극시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원가에서는 업무개시명령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오전만 문을 여는 등 단축진료를 하거나 예약된 환자만 받는 방식을 ‘휴진’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정부가 취합한 개원가의 휴진 신고율은 4.02%에 그쳤지만, 신고 없이 휴진을 하는 의료기관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서울 중랑구의 한 신경과 의원 원장은 “오전만 진료하고 오후 궐기대회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오전엔 진료를 하기 때문에 휴진은 아니라서 굳이 신고를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대법원이 의사협회가 진행한 집단휴진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법적 대응 카드가 유효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의료법 전문인 이동찬 더프렌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구상권 청구가 적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정부가 병원의 손실을 먼저 배상해주고 나중에 의사들에게 청구한다는 논리인데,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 입증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변호사는 “집단휴진으로 인한 손해가 얼마인지 병원이 직접 입증을 해야 하는데, 추정하기가 어렵다”라며 “게다가 병원이 입은 손해를 국가가 돈으로 먼저 보상해줄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단 집단휴진으로 환자가 피해를 입었다며 병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경우에는 병원이 의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순 있다고 봤다. 그는 “법원에서 병원이 환자에게 5억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리면, 병원이 의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역시 개원가가 아닌 의협에게 적용되며, 단축근무를 집단휴진으로 볼 수 있는지는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이 변호사는 “의협이 파업을 강요했을 경우 강제성 유무에 따라 공정거래 방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례는 있다. 다만 의협에 대한 책임이지 의사 개인에 대한 책임은 아니다”라며 “집단휴진의 정의에 대해서도 하루를 통으로 쉬는 것을 휴진으로 볼지, 하루 중 일부도 휴진으로 볼지는 법정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