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가 흔들리는 한국 축구가 다시 본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KFA는 “2033년까지 세계 10위 진입을 목표하겠다”면서 “장기적으로 월드컵 4강 이상의 전력을 구축한다”는 포부다.
KFA는 20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술 철학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KFA는 충격적인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대참사’를 겪은 23세 이하(U-23) 선수단을 비롯한 연령별 대표팀 운영 시스템 개선안도 공식 발표했다.
올해 들어 갈 길을 잃어버린 듯 부진한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있는 한국 축구는 지난 4월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에서 8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파리 올림픽 본선 입성에 실패한 한국 축구는 1984년 LA 올림픽 이후 40년 만에 들러리로 전락했다. 특히 객관적인 전력에서 명백하게 한 수 아래인 인도네시아에 패한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던 황선홍 감독은 U-23 아시안컵에선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 황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은 4년 주기로 가야 한다”고 패배를 복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KFA는 아시안컵 우승 실패와 올림픽 조기 탈락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대표팀 운영 체계 개선안을 준비해왔다. 이날 발표한 개선안의 주요 내용은 U-23 대표팀을 총괄 감독이 이끄는 가운데 아시안게임 코치와 올림픽 코치를 별도로 두겠다는 것이다.
이는 주요 대회들이 시간 차를 두고 연이어 펼쳐진다는 점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각 연령별 선수 관리 공백을 최소화 하겠다는 전략이다. 조준헌 KFA 국가대표운영팀장은 “올림픽에 초점을 맞춰 아시안게임을 U-21 대표팀으로 치르는 방안도 고려했다”면서 ”하지만 국내 현실상 아시안게임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정예 멤버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이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혜택으로 주어지는 병역 면제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4년 주기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대표팀을 따로 운영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안도 나왔다. 그러나 연속성과 연계성, 업무 효율성 저하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면서 결국 총괄 감독 체제에서 팀 ‘이원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사실상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현행 운영 방식과 큰 차별점이 없지 않냐는 우려에 대해 조 팀장은 “선수들을 모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A매치 기간밖에 없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감독 역량과 협회 의지, 테크니컬 디렉터와 감독⋅코치진이 잘 협업하고 철학을 공유한다면 우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책 방향의 일관성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KFA는 이날 ‘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이라는 한국 축구 기술철학 3가지 키워드도 발표했다.
KFA는 “세계 축구를 주도하며 우수한 선수를 육성해 팬들에게 영감을 주겠다”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2033년 세계 톱10 진입’ 등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공격, 수비, 공격 전환, 수비 전환으로 나눠 경기의 세부 원칙을 내놓고, 목표를 달성하는 경기를 하기 위한 코칭과 훈련 가이드라인도 소개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이사는 “축구철학과 게임 모델을 토대로 A대표팀과 U-23, U-20 대표팀의 연계성을 갖고 나아가겠다”고 강조하면서 “U-17까지 연령별 대표팀은 재능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경험을 통해 개인의 성장과 특성 발현에 중점을 두겠다”고 향후 청사진을 그렸다.
각 연령별 대표팀의 ‘동일한 방향성’을 강조한 이임생 이사는 “A대표팀과 방향성이 다르다면 U-23, U-20 대표팀 감독으로 오실 수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A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와 같은 기술철학이 발표돼 차기 감독으로 국내 지도자를 염두에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축구 현재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투지나 끈기는 물론 예의와 겸손 같은 ‘한국적 가치’가 약화했다는 분석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지훈 대한축구협회 축구인재육성팀장은 “기술철학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건 작년 1월”이라며 “내부적으로 어느 분이 감독 후보자인지 모른 상태로 발전시켜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한국인 지도자를 위해 이 타이밍에 기술철학을 만든 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단언했다.
한편 KFA는 월드컵 3차 예선을 앞둔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6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22위에 오르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조 추첨 ‘1번 포트’에 배정됐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