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와 과정을 두고 질타가 쏟아졌다. 의료계 반발을 예상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줄은 몰랐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은 뭇매를 맞았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13시간이 넘는 마라톤 청문회 내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근거가 없다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의정 갈등만 재확인했을 뿐 사태 해결에 대한 해답은 제시되지 않았다.
“의료계에서 민감한 과제라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 증원을 미리 상의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발언은 논란을 자초했다. 2000명이란 숫자를 처음 밝힌 게 지난 2월6일 확정 규모 발표 전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 때였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정심 이전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언급된 회의가 있었느냐고 묻자 박 차관은 “증원에 대해 1년 전부터 (의료계와) 논의해왔다”면서도 “정부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숫자를 밝힌 건 보정심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 등과 증원 규모를 미리 상의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선 의료계 탓을 했다. 박 차관은 “증원 필요성 자체에 대해 (의료계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가 지지부진했다”며 “공문을 요청했지만 의협에서 규모에 대한 답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공의 단체행동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지금까지 사태가 이어질지는 몰랐다”고 했다. 이에 박주민 복지위원장(민주당 의원)은 “(정책 추진이) 굉장히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며 “국민 생명과 환자 안전이 장난인가. 신중을 기해야 했던 것 아닌가”라고 질책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따라 재정이 얼마나 소요될 것인지에 대한 답변도 명확하지 못하단 지적이 있었다. ‘기획재정부와 증원 관련 예산 편성을 협의하고 있느냐’는 강선우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조 장관은 “교육부 소관 업무로 교육부가 (기재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강 의원은 “정상적인 정부라면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예산과 인력이 얼마나 드는지 꼼꼼하게 따지는 게 당연하다”고 짚었다. 강 의원은 각 대학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증원률이 40%를 넘는 전국 27개 의대에서 5조75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청문회를 지켜본 의료계 관계자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그동안 의료계와 협의해왔다고 하지만 의대 정원 증원 규모 발표 전까지 2000명이라는 숫자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국민들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실체가 밝혀진 만큼 복지부는 잘못을 시인하고 전공의 복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는 건 정부라고 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전공의들이 돌아올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은 “정부는 청문회에서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2000명 증원의 근거에 대해선 그 누구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한 발씩 양보해야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봤다. 황 회장은 “의사 배분을 위한 사안이 전 국민의 문제가 됐다”며 “이 사태가 5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분노를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의·정이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면서 “국회가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자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청문회에서 환자 피해 대책이 제시되지 않은 게 아쉽다고 평했다. 김 회장은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확정돼 되돌리기 어려운 마당에 책임 소재만 따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특별조사 기구를 만들어 이번 사태로 인한 환자 피해 사례를 모으거나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법안을 만드는 게 국회의 역할일 것”이라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