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육 문제를 놓고 의대 교육의 질을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과 교육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의평원 원장이 의대 정원 증원으로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 교육부 차관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대 교육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이 의학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 근거 없이 예단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안덕선 의평원장이 최근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의대 증원으로 비수도권 의대 상당수는 교육·수련의 질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말한 데 대한 반박으로, 의대 평가 인증의 객관성을 확보하라며 경고 메시지를 낸 것이다.
전국 의대들은 의평원으로부터 의대 교육 수준에 대한 평가 인증을 주기적으로 받는다. 입학 정원의 10% 이상 증원 등 의학교육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변화가 생길 경우에도 평가가 이뤄진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부터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의대 가운데 증원폭이 작은 연세대(미래캠퍼스)와 인제대를 제외한 30개 대학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는 신입생 모집이 정지되거나 학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대 증원 과정에서 대다수 의대가 인력·시설 부족으로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 원장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 저하는 불가피하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안 원장은 지난달 26일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교육 여건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학교육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가’라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교육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고 답했다. ‘의대 증원 이후 의학교육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각 대학 학생들의 숫자가 100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을 때 교수의 숫자, 교육병원의 규모 등이 상당히 미흡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교수 수나 교육병원 규모 등이 상응하게 증가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교육부는 “다양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의평원이 의대 증원 등 변화하는 의학교육 상황을 반영해 교육의 질을 평가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오 차관은 “의대 교수 인력 법정 기준은 교수 1인당 학생 8명이다. 현재 40개 의대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6명이며,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높은 대학도 4.8명으로 법정 기준을 여유 있게 충족하는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오 차관은 의평원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역할을 해달라며 “의사로 편중된 이사회 구성의 다양화와 재정 투명성을 포함해 운영상 적절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요청한 사항들을 신속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현재 의사 위주의 의평원 이사회 구성을 환자단체 등 다른 분야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라는 뜻이다. 의평원 이사회는 22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정부 대표와 교육·언론·법조계 각각 1명씩을 제외하고 나머지 18명의 당연직 이사가 의료계 인사로 채워져 있다.
오 차관은 의료계가 의대 증원을 반대하며 ‘교육이 불가능하다’, ‘의료의 질이 저하된다’, ‘가르칠 교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막연하고 구체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제기해 증원 정책 자체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있다”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의학교육계에선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가 이어진다. 이승희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4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의 공식 유튜브를 통해 “교수들은 교육에 시간을 투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의대 교수들은 회진, 수술 등 하루에 엄청난 시간을 임상에 투자하고 연구도 진행해야 한다”며 “이런 부분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교육을 하라’는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면서 교수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교육에 대해 학생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