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의학교육 평가·인증기관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교육부 산하 위원회의 의평원 사전심의 추진을 규탄했다. 정부의 사전심의는 의학교육 인증 기준 완화로 이어져 부실 의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국 31개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및 교수협의회(이하 비대위)는 8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교육부는 교육부 산하 인정기관심의위원회를 통한 의평원의 독립성 침해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최근 의대 교육 문제를 놓고 의평원과 교육부가 빚은 마찰이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앞서 의평원 원장은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해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교육부 차관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평원은 의대 교육 과정을 평가·인증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각 의대는 주기적으로 교육 수준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비대위는 “교육부는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의평원을 교육부 입맛대로 통제하고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면서 “의대 교육의 수준을 국제 기준으로 유지하려는 의평원에 대한 간섭과 통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기존 정원 대비 1497명 늘린 가운데 의평원은 내년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대학들로부터 주요 변화 계획서를 제출받아 평가할 예정이다. 평가 결과는 의대 인증 절차로 이어진다. 내년도 입학 정원이 늘어난 32개 의대 중 30곳이 인증 평가 대상이다.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는 신입생 모집이 정지되거나 학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주요 변화 계획서 평가, 중간 평가를 포함한 평가·인증의 기준, 방법과 절차 등을 변경할 때 교육부 인정기관심의위에서 사전심의를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의대 평가 인증 인정기관 재지정 통보 공문을 의평원에 발송했다.
비대위는 “부실한 의학교육 여건에 아랑곳없이 무조건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뜯어고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재지정 조건을 문제 삼아 언제든 의평원에 대한 인정기관 지정 취소 가능성을 열어 두겠다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현 의학교육 여건 개선 계획으로는 다수의 대학이 인증 받지 못할 것을 교육부도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라며 “의대 정원은 국민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서남의대 폐교의 교훈을 기억하라고도 했다. 지난 2018년 폐교한 종합대학인 서남의대는 의료계가 제시하는 대표적 부실 의대 운영 사례다. 당시 서남의대 재학생들은 전북의대와 원광의대로 편입학해야 했다.
비대위는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의 입학생들은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없고, 의대는 폐교될 수 있다”며 “근거도 없고, 논의와 합의라고는 애초에 없었던 2000명 의대 증원의 맹목적 과제에만 매달려 관련 규정들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려는 교육부에 경고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 건강과 올바른 의학교육을 위해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의학교육 전문가인 의대 교수들과 진지하게 논의하고 협의하기 위한 대화 테이블을 마련해주기 바란다”며 “의대 교수들은 의평원장이 밝힌 ‘평가 결과의 공정성·타당성·신뢰성을 위해 기존 의평원이 공표했던 기준에 맞춰 질적으로 잘 평가하겠다’는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