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로 인해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업무 로딩이 길어지자 겨우 버티던 의료진은 하나둘 현장 최전선인 응급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필수·중증의료를 책임지는 국내 공공의료 컨트롤타워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대로 가다간 지역 응급의료부터 뚫리며 그 여파가 도미노처럼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병원 응급실들의 파행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순천향대천안병원은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사직으로 오는 21일까지 축소 운영에 들어간다. 이 병원은 8명이 교대로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해왔는데 절반이 이탈해 4명만 남았다. 전공의 사직 이전엔 18명의 의사가 응급실을 지켰다. 전공의 이탈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신규 전문의 채용을 두고 병원 측과 기존 전문의 간 처우 문제가 불거져 갈등을 빚은 게 사직의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말에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남아있던 마지막 전문의마저 병원을 떠나면서 충청권 지역 소아 응급의료 공백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응급실 운영이 어려운 건 공공병원도 마찬가지다. 강원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의료진 줄퇴사로 지난 8일부터 운영을 축소했다.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는 아예 응급실 문을 닫는다. 응급실 이용 제한은 7월 한 달 동안으로 예고돼 있지만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파행 운영이 길어질 수 있다. 속초의료원은 지난해 초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2명이 떠나 두 달여간 응급실을 축소 운영한 바 있다. 의료원은 지난 1월부터 의료진 채용을 위한 공고를 10차례 진행했으나, 충원에 거듭 실패하는 등 인력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전국 모든 지방의료원과 국공립 의료기관의 컨트롤타워인 국립중앙의료원(NMC)도 위태롭다. NMC는 지난 3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최근엔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이 사직서를 냈다. NMC는 즉시 충원을 위한 모집에 나섰지만 지원율은 저조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선 의료진은 응급실 파행이 전국으로 확산돼 응급의료체계가 흔들리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셧다운’ 우려를 제기한다. 강원지역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순천향대천안병원, 속초의료원 등의 응급실 운영 제한은 이미 예견된 일로,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모든 병원의 응급실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짚었다.
A교수는 “전공의는 대거 이탈했는데 인력 충원은 없고, 진료지원(PA) 간호사만으론 한계가 분명한데 남아있는 인력만 갖고 응급실을 24시간 계속 돌리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 튕겨져 나가는 것”이라며 “가장 약한 고리인 지역 응급의료가 먼저 무너지게 되고 이는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주변 병원들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수도권 대형병원에서도 사직하는 교수가 속출할 것”이라며 “지역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서울로 이동하고, 지역 의료는 인력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양혁준 가천대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인천 지역도 안심할 수 없다”면서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단 정부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다 보니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돼서 1~2명만 빠져나가도 시스템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다”라며 “응급센터 운영 시간을 제한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단체는 응급의료가 소생 불가 상태에 빠지기 전에 지원을 강화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인 응급의료가 이대로 무너지게 둘 것인가”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응급의료를 위한 지원을 상시화·제도화해 달라”고 촉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