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연금 보험료율(내는 돈)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연금 재정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세대 간 형평성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지만, 더 빨리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장년층의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약 적용된다면 세계 최초로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전문가들 의견도 분분하다.
19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대통령실이 준비하고 있는 연금개혁안은 이르면 다음 주쯤 발표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말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발표 당시 언급됐던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연금 납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장년층일수록 보험료 인상 속도를 빠르게 올리는 방식이다. 가령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한다면, 40·50대는 매년 1%p씩 4년 만에, 청년층은 0.5%p씩 8년 만에 목표치에 도달하도록 시기를 조정한다는 의미다.
보험료율 인상 시 중장년보다 ‘더 내고 덜 받게 되는’ 청년층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다. 1998년 제도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무려 70%에 달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통해 2008년 50%로 떨어졌고, 이후 매년 0.5% 낮아져 올해 42%가 됐다. 2028년까지 40%로 떨어지도록 설계됐다. 소득대체율이 높은 시기에 오래 가입한 중년층 혜택이 더 큰 셈이다.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차등 적용한다면 이같은 세대별 불평등이 다소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다만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을 적용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세계 최초로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성과와 부작용 등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문가들 조차 예견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쿠키뉴스가 연금 전문가 6인에게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의 실효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렸다. 우선 세대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보험은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받는 것이 원칙인데, 이를 연령별로만 나누게 되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며 “특히 장년층 중엔 ‘정부가 청년층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청년층은 연금 불신이 있고, 노년층은 연금액이 적다는 불만이 있다”면서 “자칫 잘못하면 세대 갈등을 더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층은 깎아주겠다는 의도인데, 제도 운영의 원칙에 벗어날 뿐 아니라 재정 안정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며 “연령대별로도 저소득층인 50대는 보험료 납부가 힘든 경우가 있다. 또 보험료 내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20·30대도 있다. 성별, 계층 등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연령그룹별로 차등을 둔다면 세대별 갈라치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세대 간 형평성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이며, 재정 안정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규모 인구집단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모두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재정 안정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중장년층이 연금개혁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청년들은 낮은 소득대체율을 적용 받고 앞으로 가입기간이 길기 때문에 높은 보험료를 오래 감당해야 한다. 반면 중장년층은 과거에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 받았고 앞으로 보험료를 내야 할 기간이 짧다”며 “사각지대에 있는 중장년층은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제도적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에 차등 보험료 방안을 우리 사회가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인식하고 있는 세대 간 불공평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연금개혁을 풀어가려는 취지로 제시된 아이디어로 보인다”며 “세대 불공평성의 문제를 고려해 연금개혁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