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의료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해 실손보험에 의존하게 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무조건적인 비급여·실손보험 통제보다 과학적 검증과 평가를 거쳐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분류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본인부담율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과 선진복지사회연구회는 22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공동으로 ‘비급여 의료비 관리 및 실손보험제도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의료보험 시장은 점점 팽창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전체 건강보험 환자의 ‘보험 외 진료비’는 32조원에 달한다. 2023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전 국민의 78%인 4000만명에 이르며, 한해 지급된 실손보험비만 14조원을 기록했다. 이 중 비급여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이른다.
실손보험은 고가의 비급여 진료까지 보장하면서 수요가 높아졌지만 과다 이용과 과잉 진료라는 부작용을 양산하며 의료 현장과 건강보험 체계를 왜곡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필수의료 의사들의 이탈을 촉진해 지역·필수의료 체계를 붕괴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정부는 도수 치료, 비급여 렌즈 사용 백내장 수술, 비밸브 재건술 등 과잉 우려가 명백한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는 등 비급여·실손 관리에 고삐를 쥐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건강보험의 기능을 강화하더라도 공보험이 갖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보험의 보완적 기능을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정부는 실손보험이 의료시장을 왜곡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지 말고 국민들이 실손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국민들의 의료비 본인부담을 감소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건강보험 보장률은 6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6.3%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환자가 내야 하는 의료비 중에서 보험으로 보장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가령 진료비 총액이 100만원 나왔고 보장률이 70%라면 환자 본인은 30만원, 건보공단은 70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보장률이 높을수록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적어진다.
이 교수는 “국민들이 지불하는 건강보험료에 의존하지 말고 재원을 다각화 해 보장성을 강화하고 본인부담율을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실손보험이 과잉의료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지 못하도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의료서비스에 대한 심사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나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의료기관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비급여 항목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코드화 해 관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비급여 정보 공개를 의무화 하고, 실손보험 상품의 구조 개선을 통해 비급여 과다 이용을 억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 연구위원은 “정부는 비급여 진료의 의학적 필요성과 예상 비용, 대체 가능한 급여 항목 등의 정보를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며 “비급여 보장 연간 한도 설정 등을 통해 과도한 비급여 진료 이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복지부는 급여·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비급여 비중 높은 의료기관 공개, 비급여 진료 표준가격 설정, 비급여 항목 재평가 등이 담긴 비급여·실손 개혁 방안을 연말에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