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정경유착(3) 중앙검찰소 간부 비호 : 무역/밀수무역을 통해 돈주로 성장]
북한 혜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여성이 있다. 혜산을 기준으로 두만강 건너편에는 장백현이 있다. 그곳에 그녀의 친척들이 살았다. 북중 국경선이 없을 때는 자연스럽게 무역 및 밀무역이 이루어졌다.
그녀가 1987년에 장백현 조카 집에 방문했을 때다. 당시에는 한 집 건너 하나씩 구멍가게가 있었다. 2년 뒤 1989년에 다시 장백현에 방문했을 때는 집을 개조한 구멍가게가 가게로 자리 잡았다. 비포장도로가 포장도로로 변하고 시장에는 상품들이 넘쳐났다. 그녀는 상전벽해를 느꼈다.
이때부터 장사에 눈이 뜨인 그녀는 중국에서 상품을 받아 도매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녀는 남편이 죽고 밀무역을 하면서 딸과 단둘이 살았지만 워낙 동안이고, 애교가 많고, 예쁘게 생겨서 딸과 자매 사이가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혜산은 북중국경선이 있는 곳으로 국경경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경선을 지키는 경비대는 식사 및 잠자리가 매우 열악하다. 대부분의 하전사들은 ‘엄마 집’이라고 불리는 집을 하나씩 마련하여 그곳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다. 중요한 물건이나 돈도 맡기기도 한다.
그래서 딸을 가지고 있는 집안은 하전사를 자식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의 집은 딸이 아니라 하전사가 엄마인 그녀를 좋아해서 집에 거주하면서 무역/밀무역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각자 돈을 축척하게 됐다. 그녀는 하전사와 한집에서 살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밀무역을 함께 하며 각각 수익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 혜산은 밀무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만강 주변의 단층집은 주로 밀무역을 해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경경비대의 보호 속에서 건너편 장백현의 조선족들과 무역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민반장, 담당 보안원, 담당 보위원에게 지속적으로 뇌물을 주면서 관리를 해야 한다.
할머니께서 식당 요리사를 오래했는데 사업자본금으로 2000달러를 받아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게 됐다. 중국 대방으로는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있는 조카는 그때 그때마다 여러 물건을 대줄테니 장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시기별로 자크, 레자, 사탕/과자, 쌀, 물통 장사, 천 장사, 쌀 장사, 경대(화장대거울) 장사, 츄리닝복 장사, 손목시계 장사를 했다.
밀수로 하면 많은 물품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세관 교두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차판장사를 하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관 직원이나 국가보위부 간부에게 뇌물을 주며 관리를 했다.
혜산백화점은 1990년대 초부터 국가로부터 공급되지 않으면서 텅 빈 백화점 상점을 물류창고로 삼아 진열하고 각 도시로부터 온 도매장사들에게 유통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인민폐, 달러, 내화(북한돈)를 많이 벌면서 아파트와 단층집을 사게 되었다. 중국 대방을 통하여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트럭, 봉고차, 버스, 오토바이를 사주면서 와크비를 받았고, 금 7~8kg씩 중국으로 밀수하면서 1만 위안으로 자금을 바탕으로 돈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돈 장사는 주로 금 장사와 병행을 하는데 돈을 이관할 때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거나 외화상점 상품을 받아서 도매하거나 상품치기를 할 때 돈을 빌려주고 중계 수수료를 받는다. 왕 돈주들 같은 경우에는 집안에서 전화로 주로 업무를 하고 새끼 돈주들은 외화상점 앞에서 돈을 바꿔주는 일을 하며 일감을 물어오기도 한다.
돈 장사와 금 장사는 노력에 비해 수익이 좋아 돈주들의 최종적인 목표가 된다. 유통업을 하다가 생산하는 일을 하고 어느 정도 왕돈주로서 서게 되면 최종적으로 금융업인 돈장사와 금장사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비밀스럽게 하기때문에 중앙 검찰소 간부의 비호를 받으며 진행하고 있다.
[정경유착(4) 중앙당간부 자녀의 비호 : 중앙당간부가 퇴직하여 왕돈주의 역할을 하는 경우]
북한에서는 중앙당이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당 조직부장은 최고통치권자인 김정은이므로 당이 북한 권력의 상위에 위치해있다. 당중앙위원은 상임위원회(30명),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300명), 비서국이 있는데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비서국은 각 부 장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중앙당 조직부는 각 부문별로 생활을 지도하여 평가할 뿐만 아니라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 파워가 크다. 조직부 안에는 부문별 수십 개의 지도과가 있다. 예를 들어 당생활지도과, 국가보위부생활지도과, 사회안전부위원회지도과, 인민군당위원회지도과 등이 있어서 다른 부서들도 관여하여 통제할 수 있다.
중앙당은 원칙적으로 권력남용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으며 한 청사 안에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여하지 못하며, 국가기관이 녹음, 녹화를 통하여 철저히 감시와 통제를 받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청탁을 할 수가 없다.
중앙당 조직부장은 김정은, 중앙당 제1부부장급/제2부부장, 장관급들은 중앙당 정년퇴직을 해도 배급과 사택이 나와 간부형 돈주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 (감시와 통제가 심하여 엄두를 내지 못함)
하지만 그 이하 중앙당 간부들은 정년퇴직하면 락랑구역에 있는 중앙당 퇴직 아파트에서 생활을 한다. 감시와 통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본인이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인을 내세워 투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친족은 주로 며느리나 딸을 이용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권력구조가 피라미드식으로 되어 있어서 철저하게 위계질서가 정해져 있으며 뇌물이 일상화되어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뇌물이 들어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정년퇴직을 하면 보통 60~65세가 되는데 그때부터는 아무런 권력이 없어서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만다. 돈을 벌기가 어려운 직책이나 고지식한 간부들은 퇴직하고 할 일이 없어서 구두 수리하는 일을 부러워할 정도이다.
하지만 중앙당 조직부 간부들은 모아둔 자금을 활용하여 간부형 돈주로서 살아갈 수 있다. 또한 특권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 특권을 이용하여 아들을 중앙당 간부로 올려놓은 사람들은 그 특권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한 중앙당 간부가 정년퇴직후 딸에게 30만달러씩 주면서 능력을 보기 위해서 사업수완을 테스트했다고 한다.
딸은 30만 달러를 받아서 은하지도국 와크권을 이용하여 중국으로부터 생활필수품을 도매했다고 한다. 은하지도국 물류창고를 이용하여 물품의 15%는 평양의 락원백화점, 대성백화점, 대동강상점, 서장상점, 은방울 상점, 경흥상점에 물품을 유통시켰다. 물품의 35%는 각 구역 200명 도매꾼들이 가져가 공업품상점, 식료품상점에 물품을 공급해주었으며, 물품의 25%는 평양시내 종합시장에 시장관리소장, 중구역시장, 보통강시장, 통일거리시장, 선교시장에 물품을 도매했으며, 물품의 25%는 국영공장기업소 각 기업소에 명절 선물용으로 배급을 주는데 유통을 시켰다고 한다.
퇴직한 중앙당 간부는 딸에게 30만 달러 사용 내역서와 수익계산서를 정리하여 보고하게 했으며, 능력에 따라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퇴직한 중앙당 간부는 딜러(거간꾼)를 통해서 투자를 한다. 딜러에 의한 투자는 확실한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딜러는 지금까지 수많은 투자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실수가 전혀 없는 사람으로 중앙당 조직부에서도 신임을 하고 존경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100%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잘 못 되었을 경우에는 중앙당 이름을 먹칠하는 꼴이 되고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한 비밀이 보장되는 투자처라고 볼 수 있다.
딜러의 투자는 비밀리 하기 때문에 누구도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투자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것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국가가 돈이 없어 원유수입을 100%로 아니라 40% 정도 사 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60%는 여러 돈주들의 자금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자금을 거간꾼들이 투자하여 국내로 원유를 들어온 후 원유 도매상인들에게 판매를 하는 사례가 있다.
또한 식료 공장/담배 공장/빵 공장을 새롭게 중국으로부터 기계 설비를 들여와 만들 때도 거간꾼이 투자를 유치하여 새롭게 공장을 짓고 전국적으로 과자와 사탕, 담배, 빵을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사업에도 많이 투자를 하고 있다.
3. 돈주의 도전과 미래
최근에 북한 정권의 돈주 단속과 검열로 활동이 제약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힘이 없는 돈주들의 이야기이다.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한 돈주들은 막을 수가 없다. 이들은 중앙당, 안전원, 보위부, 중앙검찰소 등 권력 기관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보호받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의 각 유형은 돈주가 권력 구조 내에서 어떻게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중앙당의 비호를 받는 대규모 돈주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담배 공장을 운영하며, 안전부와 연계된 사업가는 교통 및 물류 사업에서 큰 수익을 올린다. 또한, 중앙검찰소 간부와 연계된 무역상은 밀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 중앙당 간부 자녀의 비호를 받는 경우에는 다양한 상업 활동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살펴봤다.
돈주의 등장은 북한 사회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시장화와 사유화의 진전을 촉진하며, 기존 사회주의 체제의 균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돈주들은 권력기관과의 유착을 통해 사업을 보호받고 확장할 수 있었으며, 이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다변화와 함께 새로운 계층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북한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돈주의 등장은 북한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이다. 그들의 활동은 북한 내 시장경제의 확산과 함께 기존 체제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북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돈주와 정경유착의 복합적인 관계는 북한 경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