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인구가 증가세를 그리는 가운데 시니어 시설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려면 규제를 완화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오는 2025년에는 20.6%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기까지 35년, 일본은 12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단 7년 만에 이뤄진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에 따라 고령층의 안정적 주거 및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 노인주거복지시설 공급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장기요양등급 없이 일반 고령층이 입소 가능한 전국 노인복지주택은 지난해 기준 40개소로, 입소 정원이 9006명에 불과하다. 이는 노인 인구 1000만명을 기준으로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공공영역인 ‘저비용 복지시설’과 고소득 고령자를 위한 프리미엄 시니어 하우징 공급 간 양극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규제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적다보니 민간기업은 값비싼 프리미엄 시설 공급에 집중한다. 반면 중간 소득층을 위한 주거 선택지는 모자라 이들의 돌봄공백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6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시니어 시설 정책 토론회’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시니어 주거 시설 운영 및 규제 현황을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시설 개발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기업의 참여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동현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장은 “모호한 법적 포지션, 각종 규제, 사업자 지원 부족, 노인복지법 관련 규제가 산업 저성장의 원인이 된다”며 “시니어 하우징 세제 혜택은 민간임대주택에 비해 수혜 폭이 낮고, 건설자금 기금 대출과 자금 회수에 한계가 있어 민간기업 참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 지원 및 제도 개선, 시니어 시설 전문 운영사 활용 등을 통해 시니어 주거 시설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설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민간업체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는 “정부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가 적극 반영되면 시니어 하우징 개발비가 보다 적게 들고,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시설을 공급할 수 있다”면서 “실버시설 민간업체 참여 수를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전문 운영사 등 더 많은 업체가 선의의 경쟁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워치의 곽은경 사무총장도 “고령층을 복지 대상이 아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자로 봐야 한다”라며 “국가가 주도해 다양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만큼 민간기업 시장을 개방해 경쟁 구도를 만들고, 질 높고 합리적 가격의 주거 서비스가 나오도록 도모해야 한다”고 전했다.
단순 주거시설이 아닌 수요에 맞는 여러 적정 시설이 공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희정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 교수는 “독일과 일본, 미국의 경우 정부 중심의 복지시설을 제공하다가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민간기업의 활용성을 넓혔다“며 ”세제 혜택 등 규제를 완화한 후 다양한 민간 연계 시니어 시설이 만들어졌고, 수요자들도 자신의 소득, 취향에 따라 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공적 보험과 연계하며 민간시장을 활성화하되 품질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가야 한다”며 “치매, 독거 노인과 일반 고령층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계층형 주거모델을 개발하는 등 연속적이고 지속가능한 노인 주거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헬스케어 리츠 사업’,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등을 통해 시니어 시설 보급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관련 사업을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허경민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은 “해외에서도 임대주택 형태의 시니어 시설이 늘고 있다”며 “내년에 민간임대주택법을 개정해 20년 장기 주거가 가능한 노인임대주택을 확대 제공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성인의 독립부터 노인이 돼 아플 때까지 연속적으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연속체계형 주거 모델을 만드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의 연속보호체계형 은퇴자 커뮤니티(CCRC) 같은 대규모 단지 개발도 논의 중”이라며 “민간기업 참여를 넓히고자 공모전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세제 혜택, 인센티브 지원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