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심장 수술하려는 레지던트 지원자가 없어요. 학생 없는 교실을 혼자 쓸쓸히 지키는 교사의 심정입니다.”
불모지였던 한국의 심장 이식 분야를 개척해온 박국양 가천대 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최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지난 1994년 국내에서 세 번째로 심장 이식에 성공한 뒤 헬리콥터 이용 심장이식, 심근 성형술, 무혈 심장 이식, 심장·폐 동시 이식 등 최초 기록을 써 내려간 심장 이식 분야 전문가다.
박 교수는 1986년 전문의가 된 이후 국내외 심장병 환자 무료 진료와 수술을 주도하며 해외 20여개국 500여명 아이들의 심장병을 치료했다. 40여차례 이상 심장 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고 인력이나 장비 등에 한계가 많았다.
박 교수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전에는 수술을 못해 죽는 심장병 환자가 많았다. 지방으로 무료 순회 진료를 돌며 수술해야 할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와 수술했다”며 “수술 후 위급 상황이 생기면 아무 때나 전화하라고 환자들에게 개인 핸드폰 번호도 알려줬다”고 했다.
박 교수는 정년이 훌쩍 넘었지만 술기를 전수받을 후배 의사가 들어오길 바라며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흉부외과는 대표적인 필수과이자 기피과로 꼽힌다. 전공의 지원율은 저조하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2024년 상반기 전공의 1년차 전기 모집 지원 결과에 따르면 63명 정원에 24명이 지원해 38%의 지원율을 기록했다. 2023년 상반기 전기에는 70명 정원에 36명이 지원해 지원율이 50%를 넘었다. 올해 하반기엔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이탈한 가운데 모집인원 133명 중 지원자가 1명도 없었다.
박 교수는 “외래 환자 진료는 가능한데 세밀한 심장 수술은 이제 힘에 부친다”며 “누군가한테 맡기려고 해도 술기를 전수받을 후배 의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1980년대만 해도 흉부외과 의사들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외국 환자들을 데려와서 수술해주고, 해외 의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하는 등 민간외교 역할을 확장해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는데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흉부외과 명맥을 잇기 위해 다각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박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의료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체계가 강화돼야 한다”며 “경제적 보상을 확대하고, 인술을 베풀수록 인정받고 지지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외국 의사 기용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 의사들이 미국에서 자리 잡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외국 의사라도 데려와서 필수의료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똑똑한 외국 의사를 선별 시험을 거쳐 육성하고 한국 의료 발전을 위해 적극 기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은퇴하기 전까지 후학 양성과 간호사 교육을 전개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중환자 병동 간호사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보람을 느낀다”라며 “환자 옆에 24시간 붙어 있는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간호사들이 환자 조치 과정에서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박 교수는 지난 2일 대우재단의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했다. 김우중 의료인상은 고(故) 김우중 대우 회장이 출연해 시작된 대우재단의 도서·오지 의료사업 정신을 계승하고자 2021년에 제정됐다. 대우재단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장기간 인술을 펼쳐온 의료인을 선정해 김우중 의료인상, 의료봉사상, 공로상을 수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