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중순경부터 여론조사를 두고 민주당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여론조사기관이 민주당에 불리한 조사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선관위(여심의)에 이의신청을 하고, 당내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개선 특별위원회(여론조사 특위)를 구성한 데 이어 지난 1월 22일 여론조사기관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율적으로 관리하던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 국회 통제 방안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사실상 여론조사통제 법까지 제정하겠다고 한다.
여론조사에 대한 정치권의 시비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유독 민주당(전신포함)이 많았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전대통령 선거 때, 인터넷 조사가 더 과학적이라면서 인터넷조사 옹호 논쟁을 벌였다. 문재인 전대통령의 두 번 대선과 임기 내내 유․무선 비율논쟁과 무선조사도 응답률을 고리로한 RDD와 가상번호(과거 안심번로) 논란, 추미애 당대표 때 선거여론조사 경력에서 과거 대통령의 이름을 넣도록 규정을 바꾼 것이 사례들이다. 물론 국민의힘(전신포함)도 없지는 않았다. 홍준표가 대선에 출마해 선거 기간 동안 여론조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 했지만 20대 대선 경선에서 보듯이 주로 경선에서다.
이러한 선거조사에 대한 문제제기의 한가지 특징은 대체로 자신에게 유리할 때보다 불리할 때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몰아갔다. 그 결과 지금의 선거여론조사가 10년, 20년, 30년 전 보다 예측이 더 정확한가? 더 정치적으로 독립적인가?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선거여심위가 생기는 등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선거조사의 예측력이 더 떨어지고, 정치적 중립성은 더 훼손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과도한 정치적 개입과 여심위 규제가 선거조사의 정확성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민심에 대한 잘못된 진단(정세분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치적 처방이나 정책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정치권 개입의 대표적 사례가 최근 민주당이 제기하는 보수 과표집이다. 즉 각종 여론조사에서 진보가 더 많아야 하는데 보수가 더 많이 응답해서 민주당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 12월 계엄과 국회 탄핵소추 이후 70%대의 탄핵 찬성이 나오자 당연히 보수보다 진보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러나 12월 탄핵 찬성은 진보만의 동의가 아니라 중도와 보수의 동의로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였다(쿠키-한길리서치 12월 2주 정기조사. 탄핵찬성 : 보수 65.3%, 중도 77.0%, 진보 89.7%). 물론 탄핵 직후와 대통령 지지율이 20% 중반 이하로 떨어지시기에 진보가 보수보다 더 많기도 했다. 그러나 그기간은 길지가 않았고, 1월 들어서는 다시 보수 우위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보수 우위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난 10여년으로 좁혀서 봐도 그러했다.
그럼 우리사회에서 이념지형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 과정은 여러 다층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중 주로 경제적, 안보적 요인과 사회적 태도 등이며, 또한 시기별 각 정당에 대한 평가의 피드백 결과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경제적 안보적 사회적 가치로 정치성향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을 보고서 저런 것이 보수나 진보이면 ‘나는 보수나 진보이다’거나 ‘나는 보수나 진보가 아니다’로 피드백 되는 과정이다. 특히 현재의 정치 상황은 피드백으로 인한 변경 효과가 더 크고 민감하게 나타난다.
그럼 이념지표의 요인을 보면, 경제의 경우는 2차 3차 산업 중심 산업화 단계에서는 보수가 우위였으나 김대중‧노무현 전대통령이후 IT․벤처 산업 육성과 4차산업이 중심이 되면서 자유로운 창의력과 유연한 문화가 요구되면서 진보가 더 이상 열세는 아니다. 그리고 다양성과 민주, 자유, 평등, 공정, 법치 등 사회적 태도에서 일부 극단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진보가 앞섰다. 그러나 국제관계와 안보에서 분단국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성과 특히 최근 미국 중심 가치 동맹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국제안보 상황에서는 진보의 스탠스가 불안하게 비춰진다. 이번 국회 1차 탄핵소추안에서 ‘소위 가치외교라는 미명 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 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했다는 지적과 ‘쎄쎄’발언 논란이 그 사례이며 민주당의 낙관적 경중안미 등거리의 실리주의, 나아가 비현실적인 중국 경도에 대한 우려를 나았다.
종합하면 진보는 이전에 비해 경제에서 열세를 극복하고, 사회적 태도에서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최근 가장 중요해진 국제 안보문제에서의 우려로 인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진보의 입지를 줄인 것은 지난 십수년간 민주당 정치의 피드백 효과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면서도 노무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보고 그 원인을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을 확실히 챙기지 않았기 때문으로 봤다. 그러한 진단의 처방은 철저히 지지층 먼저 챙기며 지지층을 동력으로 한 정치였다. 문제는 한정된 자원을 지지층에 우선적으로 배분하면 반드시 국민전체에게 돌아갈 몫은 그만큼 줄었다. 이로 인해 특히 민주당의 진보성을 충원해야 할 2030세대는 노동시장에서 노동 기득권에 밀렸고, 재정확대로 큰 수혜는 없이 갚아야 할 빚만 늘어 민주당에 대한 이반이 컸다. 그결과 민주당은 87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정당 연임에 실패했으며, 이는 스스로 진보의 입지를 줄여서 만든 보수우위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박근혜와 윤석열 탄핵의 대처에서 극명한 차이로 나타난다. 박근혜 탄핵에서는 보수 우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정한 반면, 윤석열 탄핵에서는 보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보수 과표집’을 주장한다. 정세분석 및 진단에 따라 처방도 달랐다. 박근혜 탄핵때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하고 나름 시민과 함께, 중도층을 의식 하면서 탄핵에 이어 대선에서 승리를 했다. 반면 윤석열 탄핵상황은 여론조사를 보수과표집이라고 주장하며 시민과 중도층을 의식하기 보다는 진보라 생각하는 자신들의 생각대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탄핵 소추 이후 민주당의 연이은 실책으로 인한 여론의 역풍이었다. NBS 여론조사(1월 20-22일 1000명) 탄핵 찬반 여론에서 찬반 57%, 반대 38%로 나왔으며 여타의 조사도 비슷한 추세이거나 더 부정적으로 변해 지금 당장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어도 역풍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문제는 민주당은 현시점에서도 정세인식은 바꾸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다. 앞서 지적했듯이 여론조사 규제 관련 법안을 만들고, 카톡 검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론수치를 바꾸는 ‘현실 부정’을 한 채, ‘정신 승리’ 외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국을 대응하다 보니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백중의 결과가 나오는 가운데 ‘독재자의 딸’ ‘이명박근혜’만 외치다 박근혜에 패한 문재인의 대선 참패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하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민주당의 문제는 당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 내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