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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실 겁니다, 극장에서 안 보시면.” (봉준호 감독)
우주선과 크리퍼, 그보다 더 스펙터클한 배우의 면면이 담긴, 그래서 꼭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 ‘미키 17’이 베일을 벗는다.
20일 오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미키 17’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봉준호 감독, 배우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 제작자 케이트 스트리트 픽처 컴퍼니 최두호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나오미 애키는 미키의 연인 나샤, 스티븐 연은 미키의 얄미운 친구 티모, 마크 러팔로는 원정 사령관 마샬로 분했다. 로버트 패틴슨에 이어 봉준호 감독의 고국에서 작품을 홍보하고자 한국을 찾았다.
처음 한국에 방문한 나오미 애키는 “정말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는데 감독님과 함께 오게 돼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10년 만에 내한한 마크 러팔로는 “다시 와서 기쁘다”며 “지난 방문 때 환대받아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질투했었다. 그분이 질투하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더 기뻤다”고 운을 뗐다. 이어 “봉준호 감독님은 현존하는 위대한 감독님 중 한 분”이라며 “감독님 고국에 오게 돼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연 역시 “훌륭한 동료와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쁨이 배가 된다”며 “봉 감독님과 다시 일할 수 있어서 더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캐스팅 비하인드를 묻는 말에 “성격이 이상해서 사람을 볼 때도 이상한 면만 본다”며 “어느 한구석에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 보이면 집착하게 된다”고 얘기했다. 특히 이 작품으로 처음 빌런으로 변신한 마크 러팔로의 경우가 그렇다. 봉 감독은 “첫 번째 기회가 왔다는 것이 신나고 재밌었다”며 “처음에는 되게 낯설어하셨는데 ‘내가 뭘 잘못했어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역할을 하면 멋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독재자들에게는 위험한 매력이 있다. 기묘한 매력이나 애교로 대중을 휘어잡는다. 마샬도 이상한 귀여움이 있다. 마크가 잘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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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에 기반한다. 원작도 영화도 핵심은 ‘휴먼 프린팅’이다. 봉준호 감독은 “사람을 사무실에 있는 프린터로 서류를 출력하듯 출력한다는 콘셉트 자체에 희·비극과 드라마가 담겨 있다”며 “기존 복제인간물과 다르다”고 봤다. 이어 “미키는 착하지만 찐따 같은 청년”이라며 “슈퍼히어로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을 출력하는 게 아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착하고 가엽다. 이 부분에서 기존 SF영화와는 다르게 출발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차별점을 강조했다.
섬세한 연출로 정평이 난 봉준호 감독은 업계에서 ‘봉테일(봉준호와 디테일을 합친 말)’로 통한다. 이 작품으로 봉 감독의 작업 방식을 처음 경험한 나오미 애키와 마크 러팔로는 만족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마크 러팔로는 “섬세하고 꼼꼼하고 항상 지원을 잘해주신다”며 “창의력을 발현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평했다. 또 봉 감독이 직접 그린 스토리보드에 대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림으로 보여주셔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 꼼꼼하게 설계한 공간에서 연기하게 된 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미키 17’은 할리우드 초대형 영화사 워너브라더스와 협업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봉 감독의 영화 제작 과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봉 감독의 전작 ‘옥자’를 함께한 최두호 프로듀서는 “예산만 커진 것 같다”며 “작업하는 프로세스는 동일하다. 외부 요인이 감독님의 예술성과 준비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진 않다”고 전했다.
작품이 각국 관련 매체 등 공개된 가운데, 마샬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나온다. 그러나 촬영은 이미 2022년에 마쳤다. 이에 봉 감독이 미래를 예언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봉 감독은 “역사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적인 악몽들이 (마샬에) 많이 녹아 있다. 그래서 본인 나라와 역사를 투사시켜서 보는 것 같다”며 “전 세계 정치적 악몽의 이미지를 융합해서 하나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마크가 훌륭하게 표현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사회 비판이나 풍자처럼 하나의 메시지로 달려가기보다 등장인물의 사소한 일상을 쌓아가면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미키 17’도 마찬가지다. 봉 감독은 “미키가 프린터에서 출력되는 자신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떨까. 유일한 친구인 티모가 깐족거리면서 자기를 괴롭힐 때 어떨까. 힘든 상황인데 나샤 때문에 버티는데 어떻게 위로가 될까. 이 여러 감정을 나누고 싶은 것”이라며 “그런 틈바구니에서 숨 쉬는 인간들의 감정을 같이 나눠보자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도 결국 부러지지 않고 살았다.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 하고 싶은 얘기”라고도 부연했다.
출연진은 작품에서 다루는 ‘우리 모두의 사랑’을 역설했다. 나오미 애키는 “나샤와 미키는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거다. 이게 매력”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낸다. 사랑하니까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 행동이 눈사태처럼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다. 그리고 이것이 이 스토리의 힘”이라고 밝혔다. 마크 러팔러도 “아름다운 영화”라며 나오미 애키의 의견에 동감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를 꼽았다. 봉 감독은 “우주선도 날아다니고 수만 마리 크리퍼가 뛰어다니는 스펙터클한 장면도 있지만, 풍부하고 섬세한 뉘앙스의 연기를 대형 화면으로 봤을 때 얼굴 자체가 스펙터클이 된다”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한편, ‘미키 17’은 오는 28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글로벌 개봉일은 3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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