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2000만불 들인 할리우드작 ‘미키 17’, 그래도 봉준호는 ‘봉준호’ [쿠키인터뷰]

1억2000만불 들인 할리우드작 ‘미키 17’, 그래도 봉준호는 ‘봉준호’ [쿠키인터뷰]

영화 ‘미키 17’ 봉준호 감독 인터뷰

기사승인 2025-02-21 08:00:06
영화 ‘미키 17’ 봉준호 감독.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예산 1억2000만불에 달하는 SF영화를 만들어도 봉준호는 봉준호다. 섬세한 스토리보드에 기반한 작품에서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진동하고, 아직도 신작 공개를 앞두고 두렵기도 하며, 영화 상영 중 관객이 집어든 휴대전화의 불빛에 상처받는 것 또한 똑같다. 영화 ‘미키 17’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을 19일 서울 여의도동 콘래드 서울에서 만났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다. 오는 28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한다.

‘미키 17’은 ‘기생충’ 이후 약 6년 만의 작품이다. 봉 감독은 소감을 묻는 말에 “5년이라고 해달라. 5년도 ‘이 사람 놀았나’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는데 6년은 더 그렇다”는 너스레로 운을 뗐다. 이어 ‘매번 죽는 건 여전히 끔찍하다’는 미키 17의 대사를 빌려 “8번째 영화이니 봉 8인데, 여전히 떨리고 무섭고 긴장된다”고 털어놨다.

‘괴물’, ‘옥자’, ‘설국열차’ 그리고 ‘미키 17’까지, 벌써 4번째 SF다. 봉 감독은 “필모그래피 절반이 SF인 건데, 따지고 보면 SF지만 SF 같지 않은 영화”라면서도 “좋은 의미에서 SF의 탈을 썼지만 결국 인간 얘기로 되돌아오고 싶어서 하는 것 아닐까”라고 자평했다. 이는 ‘발냄새’, 아니 ‘사람 냄새’ 나는 SF라고 소개되는 ‘미키 17’에도 해당된다. 원작 소설 ‘미키 7’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티모(스티븐 연)도 SF 영화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캐릭터잖아요. 원작에서는 전혀 그런 캐릭터가 아닌데, 장르에 접근하는 제 방식이 삐딱한 것 같아요. 저는 원작의 ‘휴먼 프린팅’이라는 콘셉트 자체에 가장 집중했어요. 로버트 패틴슨을 계속 출력하고 싶었어요. 출력되기 좋게 생겼어요(웃음). 방대하고 철학적인 원작의 세계관보다는, 착하기만 하고 불쌍하고 찌질한 청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이 미키라는 친구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시공간적 배경을 앞으로 당겼다. 그렇게 작중 배경은 2054년 니플하임 행성이 됐다. 봉 감독은 “근미래에 닥칠 현실”이라며 “그래서 인물들도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원작에서 ‘핫샷’으로 그려지는 베르토는 ‘밑바닥 인생’인 티모로 바뀌었고, 미키가 역사학자라는 설정도 삭제됐다. 여기에 두 사람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원정 사령관 마샬(마크 러팔로) 아내 일파(토니 콜렛)도 원작에 없던 인물이다. 봉 감독은 “독재자가 커플일 때 더 재미나지 않나”라며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 측면에서 부부의 시너지를 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각본을 쓴 것은 2021년이고 촬영 시기는 2022년”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마샬, 일파 부부의 행태를 자국 정치인과 연관 지어 보는 반응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유럽에서 인터뷰할 때 이태리 여자 기자분이 있었는데 무솔리니를 모델로 하지 않았냐고 하시더라고요. 미국 기자님들은 요즘 맹활약하시는 분으로 이해하시고요. 방에 크리스탈볼(예언 도구)이 있냐고 하셨어요. 자국의 정치적 스트레스를 투사해서 보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모델로 삼은 정치인들은 있었지만, 다 과거 정치인들이었거든요. 독재자 대부분이 매력 있어요. 되게 위험한 건데 그렇기에 군중이 끌려가는 거거든요. 마크 러팔로 형님이 참 맛깔나게 해주셨어요.”

영화 ‘미키 17’ 봉준호 감독.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 17’은 봉 감독의 첫 로맨스이기도 하다. 특히 미키의 연인 나샤(나오미 애키)는 러브스토리는 물론, 영화의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다. 봉 감독은 “미키가 처한 상황이 아주 가혹한데 어떻게든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이 부분에서 관객분이 위로 받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나샤 때문”이라며 “그래서 둘의 사랑이 중요했고 잘 찍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니플하임의 토착 생물 크리퍼 역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소재다. 크리퍼는 원작에서 지네처럼 묘사됐는데, 영화에서 구현된 외형은 크루아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봉 감독은 “혐오스럽다가 갈수록 마마 크리퍼의 위엄 같은 게 있다. 심지어 주인공이랑 대화도 한다. 여기에 걸맞은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며 “‘옥자’, ‘괴물’ 디자인했던 장희철 씨한테 크루아상 빵을 주면서 ‘디자인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원작자도 보시고 되게 즐거워하셨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최첨단 이동수단 우주선에서 하필 미키의 기억 저장 장치가 벽돌 모양인 것도 흥미롭다. “영국에서 영화를 찍어서 그런가(웃음). 어렸을 때부터 빨간 벽돌을 좋아했어요. 우주선도 보면 구질구질한 곳이 많잖아요. 휴먼 프린터만 팬시(Fancy)하지. 호텔도 번듯하다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표지가 붙은 공간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바뀌잖아요. 우주선 전체가 그런 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소품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미키 17’는 봉준호 감독과 워너브라더스의 첫 협업물로, 할리우드에서도 제법 큰 프로젝트다. 당초 책정된 제작 예산만 1억2000만불이었고, 실제로는 1억1800만불이 들었다. 늘 그랬듯 스토리보드대로 찍었더니 일정과 예산에 변동이 없었다는 봉 감독의 설명이다.

“할리우드 기준으로 보면 중간 규모랑 블록버스터 사이 정도예요. 중대형인 거죠. 이 부분을 체감한다거나 프레셔(압박)을 받은 기억은 없고요. 평소 작업하던 대로 했어요. 스토리보드를 정확히 준비하니까 스태프들은 좋아하더라고요. 의외로 서부권 감독들은 스토리보드를 안 만들거든요. 또 한국에서는 대부분 현장 편집을 하는데, 외국 배우들은 되게 신기해해요. 왜 이렇게 하냐고 물어보면 ‘한국인은 성격이 급해서 그래’라고 하죠(웃음). 순탄하게 잘 끝났어요.”

‘미키 17’은 봉 감독의 첫 할리우드 영화지만, 국내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한국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다. 개봉일 외에도 국내 관객을 위해 힘을 쏟은 지점은 또 있다. 바로 자막이다. 봉 감독은 영어로 된 대사의 온전한 의미 전달을 위해 한글화 작업에 참여했다.

“크레디트를 보면 한글 자막 감수에 저랑 샤론 최(한국명 최성재) 이름이 올라갈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을 직접 감수했어요. 처음에 최성재 씨가 한 챕터씩 소설을 번역해서 넘겨주면 제가 원작을 읽고 흡수했어요. 그리고 한글로 시나리오를 썼죠. 그러면 또 최성재 씨가 그 시나리오를 영어로 바꾸고, 또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배우들이 즉흥 연기를 하기도 하고, 먼 길을 돌아서 이렇게 온 거예요. 자막은 일단 배우가 말하는 것에 충실해야 하는데, 한글로 초고를 쓸 때 엄청 고민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단어 선택에 있어서 재미있는 표현을 쓰려고 했고, 현시대에 벌어지는 일처럼 요즘 말투도 많이 쓰려고 했어요. 대사가 가진 풍성함이 쪼그라드는 게 두려웠죠. 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하고요. 인건비를 따로 받지 않았어요(웃음).”

이처럼 봉 감독이 온 힘을 쏟아 만든 작품으로 목표하는 바는 어떠한 메시지 전달이 아닌, 관객의 몰입이다. “관객들이 2시간 내내 절대 핸드폰을 못 열게 만드는 것, 출발점부터 종착역까지 완전히 움켜잡고 같이 가는 게 제일 큰 목표예요. 시사회 때 뒷줄에 앉았는데 핸드폰 불빛이 딱 들어오면 마음의 상처가 되죠. ‘어디 사는 몇 세지? 관악구에서 오신 분인가? 서초구에서 오신 분인가? 누구지? 왜 꺼냈지?’ 생각하는 거죠. 메시지는 둘째 문제고, 영화적 흥분을 통해서 관객들을 어떻게든 끌고 가고 싶어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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