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게 마지막 겨울 이겨내요" 겨울 야생동물 탐조기[1]

"슬기롭게 마지막 겨울 이겨내요" 겨울 야생동물 탐조기[1]

- “서로 도와가며 혹은 각자 삶의 방식대로…”
- 한파 속 봄 기다리는 이 땅의 야생동물들

기사승인 2025-02-23 06:00:11 업데이트 2025-02-23 11:46:41
‘함께 있어서 따뜻해요’
지난 14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에서 먹이활동을 마친 후 함께 온기를 나누는 수달가족을 만났다.
물가 서식 동물로 알려진 수달은 겨울철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으나, 실제로는 추운 계절에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포유류 중에서도 특히 털의 밀도가 높은 수달은 물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 혹한의 날씨에도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수달은 개체 수가 줄면서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된 수달은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1종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뚜렷한 사계절을 자랑한다. 폭염에 시달리는 여름과는 달리, 겨울은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에게도 혹독한 시련의 계절로 다가온다.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 ‘삵’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에 지정된 삵은 한반도의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다. 삵은 밤에는 빛을 반사하는 동공 덕분에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낮에는 털무늬가 주변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상대적으로 식별이 어려운 특징을 보인다.
고양이와 유사한 외형을 지녔으나, 몸집은 고양이보다 크며, 꼬리에는 고리 모양의 가로 띠가 있어 눈에 띈다. 특히 눈 위, 코, 이마 양측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흰 무늬는 삵을 구별할 수 있는 주요 식별점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삵의 몸길이는 약 55~90㎝, 꼬리 길이는 약 25~32.5㎝에 달하며, 불분명한 반점들이 다수 관찰된다.

지난 2월 중·하순, 쿠키뉴스는 생태사진가와 함께 홍천, 인제, 양구, 가평, 팔당 등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야, 계곡, 하천을 누비며 겨울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야생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포착했다. 현장에서는 아지랑이처럼 멀리서 봄의 기운이 스며들어오지만, 야생동물들에게는 여전히 먹이 부족과 추위와 싸워야 하는 긴 겨울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혹한 속에서도 새 생명을 품기 위한 준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생태사진가와 전문가들은 이번 촬영 현장이 야생동물들의 고난과 동시에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 박새가 먹이터에서 땅콩을 부리에 물고 이동하고 있다.

 

물 속에서 물고기를 마음껏 잡아먹은 후 양지바른 얼음판 위에서 사랑놀이 하는 수달 암수부터 3월 초 번식지로 돌아가기 전 혼인색을 띤 고니무리, 지난 해 원인모를 이유로 떼죽음을 당했던 산양들, 높은 나무 위에 앉았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순간 쥐를 낚아체 오르는 긴점박이 올빼미, 호랑이 없는 이 땅의 최상위 포식자 삵 등 그들의 야생 시간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 2회에 나눠 소개한다.
‘여유롭게 산책 즐기는 수달’
맑은 수질의 지표종으로 꼽히는 수달이 홍천군 하류에서 포착됐다. 수달은 족제비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주로 먹잇감이 많은 강이나 호숫가에 서식한다.

1회: ‘추위는 저 멀리’ 야생의 삶 즐기는 수달과 삵 등 포유류
2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순도순 함께 살아가는 야생조류
▲ 한창 번식기의 계절인 수달!

 ‘추위는 물렀거라’ 야생의 시간 즐기는 수달과 삵 등 포유류
봄을 알리는 입춘과 우수가 지났지만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에서 16일, 19일에서 21일까지 2회에 걸쳐 용환국 생태사진가와 함께 야생동물의 삶을 카메라와 드론의 초망원렌즈를 통해 담았다. 대부분의 동물은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보호종이어서 취재한 장소는 밝히지 않는다.
‘사랑 찾아…’
먹이활동을 마친 수달 수컷이 암컷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수달은  1~2년에 한 번 번식 하며 교미 시기는 1~2월이다. 교미는 주로 물속에서 하며 임신 기간은 63~70일이다. 새끼는 평균 2마리를 낳는다. 

 수달
지난 13일 아침, 홍천강 하류의 한 다리 아래 수달 발자국이 강을 가로질러서 수없이 찍혀 있다. 서둘러 발자국 끝의 얼음판 사이 숨구멍이 잘 보이는 곳에 위장텐트를 치고 초망원렌즈로 관찰했다. 이번에는 수달 얼굴을 쉽게 볼 수 있겠다는 기대와는 달리 오후 늦게까지 수달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발과 입으로’
수달이 물고기를 앞발로 움켜쥔 후 맛나게 먹고 있다. 호수가 꽁꽁얼고 흰 눈으로 덮힌 겨울, 대부분의 동물들은 활동을 최소화하거나 동면에 들어가지만 수달은 다르다. 이들은 영하 20도의 강추위에서도 몸사리지않고 얼음 구멍 사이로 잠수해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사냥한다.

야생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짧은 겨울 해가 산 능선 너머로 기울어가는 황혼 무렵, 얼음판 위에서 펼쳐진 수달의 놀라운 사냥 장면이 포착됐다. 지친 인간의 눈앞에 펼쳐진 수달의 모습은 자연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얼음 구멍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달은 입에 큼지막한 물고기를 물고 있었다. 꺽지로 추정되는 물고기를 능숙하게 먹어치운 수달은 곧바로 물속으로 잠수했다. 놀랍게도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물고기를 잡아 올리기를 반복, 단 20여 분 만에 물고기 6마리를 먹어치우는 놀라운 사냥 실력을 선보였다.

포식을 마친 수달은 바위 위로 올라가 몸을 말리며 휴식을 취했다. 이후 유유히 물속으로 사라진 수달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잠자리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먹이활동을 마친 수달 한쌍이 서로의 몸을 핧아주며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수달은 족제비과 포유류 중 대형에 속한다. 성체의 경우 몸통의 길이 650~1,100㎜, 꼬리의 길이 300~500㎜이다. 몸은 수중 생활을 하기에 알맞게 발달되었다. 다리는 짧고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어서 헤엄치기에 적합하다.

이튿날, 수달이 자주 출몰한다는 인제 내린천을 찾았다. 강 한가운데 뚫린 숨구멍과 바위에는 어김없이 수달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제보다 짧은 기다림 끝에 얼음 숨구멍 사이로 두 마리의 수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부인지 연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짝짓기 철을 맞아 연신 애정 표현을 하며 사랑을 나눴다. 함께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젖은 몸을 서로 핥아주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카메라를 의식한 듯 다양한 포즈를 취해줘 사진과 영상 촬영도 수월했다. 어제 텐트 속에서 보낸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먹이가 여기 있었네."
5일간의 긴 잠복 끝에 북한강과 만나는 한 강줄기에서 삵을 만났다. 삵은 강추위 속에서도 활발히 먹이 활동을 하는 듯 털에 윤기가 흐르고 영양 상태도 좋아 보였다. 삵은 1950년대까지 우리나라 산간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쥐약과 살충제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으며 멸종 위기에 놓였다.

 삵
야생 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고된 작업이다. 삵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먹이를 놓아두고 기다려도, 워낙 조심성이 많고 예민한 탓에 인간의 꾀에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야행성 동물인 삵을 촬영하기 위해 위장 텐트를 치고 오후부터 기다렸지만, 새벽이 되도록 삵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다른 야생동물을 촬영하기 위해 낮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더니, 영리한 삵은 촬영용 먹이를 깔끔하게 먹어 치운 뒤였다. 다시 먹이를 놓고 기다렸지만, 삵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 맛난 냄새가 나는데…"
삵은 시각·청각·후각이 매우 발달했다. 특히 어두운 곳에서는 눈동자가 완전히 벌어져 조금만 빛이 있어도 사물을 볼 수가 있다. 새끼는 5월경 빈 나무구멍에 4, 5마리를 낳는다. 

며칠 후, 북한강변에 삵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삵이 다니는 길목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텐트를 설치했다. 삵이 좋아하는 고등어로 냄새를 풍기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밤 9시가 넘어서자 멀리 숲속에서 삵의 눈빛이 조명에 반사되어 카메라 파인더에 들어왔다.
조심성 많은 삵은 한참이나 주변을 살피고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먹이를 맛있게 먹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삵을 밤새워 기다린 지 5일 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산양과의 조우'
산양은 천연기념물이자 1급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또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Ⅰ(멸종위기에 처한 종으로 국제 거래에 영향 받거나 받을 수 있는 종)에 등재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산양
2년 전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서식하는 산양은 최대 약 2천 마리로 추산했다. 하지만 지난 겨울 안타깝게도 산양이 전체 개체수에서 절반 가까이 혹은 그 이상 떼죽음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을 위해 설치된 울타리와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산양이 대거 폐사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2019년 ASF 차단 울타리 설치 후 2020년 산양 폐사율이 3.9배 급증했다"며 "울타리가 서식지를 파편화해 개체군을 고립시키고 환경 변화 적응력을 약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폭설로 인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산양이 생존을 위해 이동하던 중 울타리와 험준한 지형 등 장애물에 부딪혀 폐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올해는 눈도 많이 내리지 않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도 많이 제거돼 산양이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양은 천연기념물이자 1급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눈 덮인 양구 해안면의 한 계곡 초입에서 산양과 잠시 마주쳤다.

‘눈밭의 노루 수컷’
노루는 울릉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서식하는데 본토보다는 제주도의 한라산에 많다. 황갈색를 띤다. 어깨높이는 100~150cm, 체중은 15~50kg으로 일반적으로는 암컷이 20kg 내외, 수컷은 25kg 정도이다.

노루
소목 사슴과 노루속에 속하는 동물로 시베리아노루라고도 한다. 사슴과 비슷하지만 사슴보다 작고 뿔은 수컷에게만 난다. 엉덩이에 흰 반점이 있고 고라니와 함께 사슴 중에서는 소형종에 속한다.

1980년대에는 절멸 위기까지 몰렸으나 지속적인 보호정책 덕에 1993년 5천여 마리, 2009년 1만 2881마리, 2015년 약 1만 4천여 마리까지 늘어다. 제주도에서는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 농작물 피해가 심해 농부들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앗, 못보던 사람이 나타났네’
사람들은 노루와 고라니를 잘 구별 못한다. 둘의 차이점은 노루는 엉덩이에 흰 반점이 있지만 고라니는 없고 노루는 수컷은 뿔이 자라지만 고라니는 암컷 수컷 둘 다 뿔이 자라지 않는다. 고라니는 입주변에 송곳니가 돌출되어 있지만 노루는 없다. 둘은 속 단위에서 다른 종이긴 하지만 같은 노루족에 속하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다.

노루의 서식 장소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초목이 우거져 숨을 곳이 많은 10월경까지는 산 중턱 이하에서 서식하고 겨울이 되면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눈이 내리는 12월 하순부터는 먹이 때문에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단독 생활을 하거나 어미와 새끼로 구성된 작은 무리를 이룬다. 짧은 겨울 해가 서서히 넘어갈 무렵, 인제의 한 야산 들판에서 노루 수컷과 조우했다.
홍천의 한 들판에서 만난 어린 노루는 안타깝게도 왼쪽 앞발이 부러져 있었다. 동행한 사진가는 "아마도 사람이 놓은 덧에 걸려 빠져나오려다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생태 사진가 용환국 씨는 "봄을 앞둔 지금 시기가 야생동물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라며 "집 앞에 새들 먹이를 놓아주면 정신없이 먹이 활동을 하지만, 동료 새들이 날아오면 기꺼이 먹이터를 내주며 사이좋게 겨울을 보낸다. 포유류들도 먹이를 넉넉히 놓아주어도 자신이 먹을 만큼만 먹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동물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돕고 사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사람이 배울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춘천·인제·양구·홍천=글 곽경근 대기자/ 사진=곽경근대기자· 용환국생태사진가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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