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팬데믹’ 우려에 美·日은 백신 비축…국내는 ‘예산 전액 삭감’

‘조류독감 팬데믹’ 우려에 美·日은 백신 비축…국내는 ‘예산 전액 삭감’

미국서 조류독감 사망자 발생…젖소 감염 사례도 3건 발생
질병청장 “조류독감 대유행 일어날 수도…대비해야”
해외는 백신 확보 분주한데…“국내 예방 백신으론 예방 어려워”

기사승인 2025-03-05 06:00:08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감염 사례가 늘고 있어 팬데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독감)가 사람에게 전파되는 사례가 늘면서 ‘넥스트 팬데믹’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이 조류독감 백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질병관리청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주간 해외 감염병 발생동향’에 따르면 미국 연구진이 소를 진료하는 수의사 150명을 대상으로 혈청 검사를 실시한 결과, 조류독감에 감염된 젖소와 직접 접촉을 한 적 없는 3명의 수의사가 조류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감염된 수의사들은 모두 무증상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감염된 젖소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질병청은 전했다.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보다 더 많은 감염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된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나왔다. 질병청 보고서에 보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A형(H5N1)에 중증 감염돼 입원했던 65세 환자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1월6일 사망했다. 해당 환자는 집에서 기르던 가금류와 접촉해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으며, 고연령층으로 독감 합병증 위험이 있는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다. 

조류독감은 닭, 오리, 칠면조, 야생조류 등에 발생하는 바이러스다. 하지만 최근 조류 뿐 아니라 젖소, 고양이 등 포유류를 비롯한 인체감염 사례도 늘고 있다. 유럽질병관리예방센터(ECDC)에 따르면 2003년 이후 24개국에서 조류독감 A형(H5N1) 인체감염 사례가 총 907건 보고됐다. 특히 현재 유행하고 있는 고병원성의 H5N1형 바이러스는 조류독감 유형 중에서도 치명률이 53%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다. 

한국도 안심하긴 이른 상황이다. 아시아 지역은 겨울 철새가 주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전파하기 때문에 최근 국내 가금농장에서도 확진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29일 첫 발생 이후 지금까지 닭과 오리 농장에서 32건의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1 감염 사례가 나왔다. 

아직 국내에서는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 사례는 단 한 건도 발생한 적 없다. 그러나 지난 2023년 8월 국내에서 고양이가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감염돼 폐사하는 사례가 보고된 만큼 사람 전파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고양이처럼 인간 사회 가까이 살고 있는 포유류가 조류독감에 감염된 사례가 나왔기 때문에 사람이 생활하는 환경 가까이에도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H5N1 바이러스가 ‘인간 대 인간 전염’을 일으키는 수준까지 진화할 경우 코로나19보다 심각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감염병 전문가들이 AI 인체 감염에 대해 논의 중이다. 지금 보고된 사례를 보면 언제라도 AI 인체 감염과 대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국내에서는 AI의 인체감염 사례가 아직 한 건도 없지만 위험성이 지속해서 커지고 있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도 국내 인체감염 사례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4일 쿠키뉴스에 “조류독감은 주로 철새나 닭, 오리 같은 가금류를 중심으로 퍼졌는데, 최근엔 미국에서 젖소에 의한 인체감염 사례도 나왔다”며 “팬데믹까지의 마지막 단계로, 사람 간 전파가 빠르게 가능해지는 유전자 변이를 획득하는 일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도 철새, 닭, 오리 농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재작년 길고양이의 고병원성 감염 사례가 나왔기 때문에 한국도 긴장을 늦출 순 없다”고 짚었다.

질병관리청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해외는 백신 확보 분주한데…“국내 허가 백신으론 예방 어려워”

문제는 국내의 조류독감에 대한 ‘넥스트 팬데믹’ 대응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팬데믹 발생에 대비해 조류독감 백신 물량을 비축하고, 팬데믹 유행 균주에 맞는 백신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역량과 전략을 갖추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은  H5N1 백신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캐나다 공중보건국(PHAC)은 지난달 19일 조류 인플루엔자 예방 인체용 백신 ‘아레팬릭스 H5N1 A’(ArepanrixTM H5N1 A) 50만 회분을 구매해 비축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국내 방역당국도 선제 대응을 위해 7만5000명분의 백신 예산 70억원을 신청했으나, 지난해 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김 교수는 “미국, EU(유럽연합), 영국, 일본 등은 조류독감 백신을 이미 구입해서 비축했다. 팬데믹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대량 생산을 위한 공급 계약을 미리 할 정도”라면서도 “국내에서 승인 받은 조류독감 백신으로는 인체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조류독감 백신은 GC녹십자의 ‘지씨플루에이치파이브엔원멀티주’가 유일하다. 국내 기술로 처음 개발한 조류독감 예방백신으로, 지난 2015년 승인을 받았다. 

GC녹십자의 백신 개발에 참여한 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재 유행하는 고병원성 조류독감 백신으로 클레이드 2.3.4.4b 계통의 백신 바이러스 주를 백신 항원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면서 “2015년 녹십자와 개발한 백신은 처음 베트남에서 유행했던 클레이드1 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이라, 현재 유행하는 조류독감을 예방한다고 보기에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유행 당시에도 백신을 뒤늦게 확보해 질타를 받은 바 있다”며 “현재 조류독감이 당장 팬데믹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니라 예산 지원이 이뤄지면 충분히 백신 확보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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