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회복” vs “과도한 특혜”…의료사고 안전망 ‘설왕설래’

“필수의료 회복” vs “과도한 특혜”…의료사고 안전망 ‘설왕설래’

기사승인 2025-03-06 16:30:25
6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보건복지부TV 캡처

필수의료 행위 중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유족 동의가 있다면 의료진의 형사처벌을 면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가운데 환자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6일 보건복지부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의료진의 의료사고 소송 부담을 줄이기 위한 형사·배상 체계 개선을 추진해왔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필수의료 관련 형사 체계를 중대 과실 중심의 기소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존 형사 기소 기준을 중대 과실 여부로 전환한다는 취지다. 환자·의료진 간 합의에 따른 반의사 불벌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고위험 필수의료의 경우 사망사고에도 반의사 불벌을 적용할 계획이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심의위) 신설도 병행한다. 의사, 법조인, 환자단체 등으로 구성한 심의위는 150일간 해당 의료 행위가 필수의료에 해당하는지, 의사 과실이 얼마나 중한지 판단한다. 필수의료 진료에서 단순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결론 나면 수사기관은 기소를 자제하고 수사를 종결하도록 할 방침이다. 심의위가 수사와 기소 여부를 가르는 핵심 권한을 갖는 셈이다.

정부는 환자·의료진 간 소통·신뢰를 바탕으로 의료사고 피해의 실질적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 이번 방안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선을 다한 의료진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안정적 진료 여건을 조성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소한다는 구상이다. 이외에도 복지부는 △공적 배상 체계 강화 △환자 대변인 제도 신설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 배상 확대 △환자·의료진 트라우마 회복 지원 체계 구축 △의료사고 예방 활동 전개 등을 제시했다.

환자들 “의료사고 피해자 권리 악화”

환자단체의 반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은영 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정부 방안은 의사들의 의료사고 책임을 지나치게 완화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크게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며 사법리스크를 이유로 특례를 추진하겠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는 “심의위를 필수의료 여부와 중대 과실 유무를 판단하는 기구로 도입하면 사실상 의료사고 의사에 대한 불기소 처분이 남발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형사처벌 특례를 도입하기 전에 의료사고 피해자가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피해자 입증 책임 부담 완화, 의료분쟁 감정 제도 개혁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인 사법리스크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폈다. 이 이사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라는 곳에서 연평균 754.8건의 의사 기소가 있었다고 발표해 이슈가 됐지만, 실제 연평균 의사 기소는 30~40건에 불과하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의협 연구소가 지난 2022년 발간한 ‘의료행위의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8년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었다. 이 분석대로라면 하루 평균 2명의 의사가 의료과실로 기소됐다는 얘기다. 

이 이사는 “정부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연도별 의사 업무치사 과실 고소 건수와 기소 건수 연구를 의뢰했고, 이달 중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자료를 공개하면 과도한 의료인 사법리스크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조계도 환자단체 의견에 힘을 보탰다. 유현정 나을 법률사무소 대표는 “의료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2013년 1101건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4년부터 900건으로 감소했고 2023년에는 768건으로 줄었다”라며 “의료분쟁 해결 제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의료소송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진행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황만성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필수의료 분야 형사특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황 교수는 “의료사고 역시 특례가 아닌 형사법의 기본적인 원칙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면서 “형사 사건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며 환자와 의료인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보건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의료계 “의사들 1년에 업무과실치사로 780건 기소”

반면 의료계는 의료사고로 인한 의사 형사기소 건수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1년 내 형사기소되는 의사 소송 건수는 3~4건에 불과한데 우리나라는 최소 500건 이상이라는 주장이다.

이성순 일산백병원 교수는 “한 해 동안 검찰청에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되는 의사가 780건 정도다”라며 “우리나라 의사들이 해외 의사보다 더 게으르거나 실수를 많이 하는 게 아니라면 형사기소가 과도하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라고 했다. 연평균 의사 기소가 30~40건에 불과하다는 환자단체의 주장에 관해선 “1심, 2심, 대법원에서 1년 내 확정 판결이 나는 건수가 30건 정도인 것”이라며 “검찰과 경찰이 기소를 하더라도 실제로 불기소되거나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합의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확실치 않은 집계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의료소송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의사들과 국민 모두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교도소 담장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더 줄어들면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라며 “심의위가 과실 여부의 중함을 파악해 기소를 할지 판단하면 불필요한 사법 절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의료기관 개설자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정부가 보험료 산출과 상품 등을 관리·감독하겠다는 배상 체계 혁신안에 대해서도 일부 의견이 엇갈렸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의료사고는 손해율이 높아 수익 위주의 민간 보험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면서 “별도의 의료사고 공적 배상 기구를 만들어 손해율과 위험률을 계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배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김태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부 기구 설립보다는 현재 있는 보험사나 공제조합에 의료인들이 최대한 가입하게 하고, 정부가 감독하는 체계가 효율적”이라고 제시했다.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쳐 실행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강준 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의료진과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의료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토론회와 각계 의견 수렴 등을 진행하고 의개특위 논의를 거쳐 실행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통해 국회 논의 및 입법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