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소설가로 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에게 중요했던 15년을 담은 ‘세미 자서전’을 써보자고 마음 속 프로젝트명을 정했죠.”
한국 문학의 르네상스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장류진(39)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밀리의서재 본사에서 쿠키뉴스와 만났다. 지난달 장류진 작가가 선보인 신작은 독자들이 기다려온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기다렸을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는 게 책을 완독하고 나서 든 첫 번째 감상이었다.
장류진 작가는 지난 2018년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IT업계에서 10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른바 ‘회사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연이어 펴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0만부 이상 판매된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리얼리즘 문학을 선보인 장류진 작가는 소설집 ‘연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로 제11회 젊은작가상,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거머쥐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최근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 ‘달까지 가자’ 두 권이 ‘해리포터’ 시리즈로 공전의 히트를 친 영국 블룸스버리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번역은 김언수의 소설 ‘뜨거운 피’ 영역을 담당했던 번역가 션 할버트가 맡았다. 장류진 작가는 “번역가가 한국에 살고 있어 만나 봤는데 너무 좋았다”면서 번역 작업이 거의 끝나간다고 귀띔했다. 올해 여름이면 영역본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시선과 술술 읽히는 독보적인 문체로 주목받은 장류진 작가는 지난달 19일 핀란드 여행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선보였다. 핀란드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친구 ‘예진’과 함께 다시 핀란드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리유니언 여행기’라는 포장지를 썼지만, 실제 책을 읽어보면 여행 에세이라기보다는 친구와의 우정 혹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책에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이 책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을 쓰려고 간 여행은 아니었다”면서도 “어쨌든 직업 작가니까, 뭔가 건져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장류진 작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서서히 “써야지가 아니라 ‘쓰게 되겠다’, ‘쓰겠네’로 바뀌어갔다고 회상했다. 직관적으로 에세이를 쓰자는 구상을 했고, 그런 결심에는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해보자”는 마음이 담겼다. 작가는 “15년 전을 돌아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고 복기하면서 “교환 학생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플리마켓에 물건들을 팔던 당시, ‘내 인생의 황금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작가는 그때의 자신에게 “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 아니야. 더 반짝이는 순간들을 품은 어른이 돼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장류진 작가는 “장소가 핀란드라는 점도 좋은 책이 되겠다고 느낀 부분”이라며 “한국 사람들이 관심 없는 나라, 한국에 각인이 안 된 나라인데 저는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실제 핀란드 관련 서적은 여행 책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한정적이다. ‘핀란드 여행 에세이’로만 승부했어도 출판 시장에서 꽤 의미가 있었을 책인데, 이에 더해 친구의 소중함을 얘기하면서 작가 장류진의 15년을 담아냈다. 여행 에세이로서도, 작가의 세미 자서전으로도 훌륭한 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장류진의 정수가 담긴 소설집 ‘연수’, 아픈 손가락이 된 사연
작가들은 흔히 책을 펴내고 나면, 그것들을 마치 자식과도 같이 느낀다고 한다. 만족스러운 작품이 있다면 ‘아픈 손가락’도 존재한다. 장류진 작가에게는 ‘연수’가 그렇다.
“제가 워낙 감사하게도 데뷔작인 첫 번째 소설집(일의 기쁨과 슬픔)부터 너무 주목받았고 첫 번째 장편(달까지 가자)도 사랑받았다. 그런데 그 두 권만 언급을 주로 해주시고, 세 번째(연수)까지 잘 안 가더라(웃음). 앞에 두 책이 워낙 조명을 받았다보니 독자들에게 덜 가닿은 느낌이다.”
장류진 작가는 ‘연수’에 대해 “일의 기쁨과 슬픔보다 제가 쓸 수 있는 정수를 더 담았다고 생각하는데 덜 언급되다보니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라면서 “내가 좀 더 알렸어야 했나,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뭘 했어야 하나 후회도 됐다”고 털어놨다. 장류진 작가는 “가장 아끼는 작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딜 가든 연수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문학은 글과 언어로 하는 예술
장류진은 글을 적확하게 쓰기로 소문난 작가다. 일례로 장편집 ‘달까지 가자’에선 마지막 장면에 단어 하나를 넣기 위해 대한민국 전국 지도를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현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경우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팩트 체크’를 한다. ‘달까지 가자’ 마지막 장면에 다해, 은상, 지송 세 명이 서로 각자의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바다를 끼고 달리는 6차선 도로가 없었다. 그래서 바다를 끼고 달린다는 표현을 빼고, 먼저 달리고 난 이후에 바다를 가는 걸로 바꿨다.”
퇴고에도 특히 공을 들이는 장류진 작가는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면서 “어떤 장면을 계속 돌려보다 성에 차지 않거나 ‘이 상황에서 실제로 이런 말을 할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는 다시 바꾸는 작업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핍진’한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다.
“대사를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장류진 작가는 “직접 소리 내어 말해보기도 하면서 글을 쓴다”면서 ‘연수’ 작가의 말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사를 말하기도 했다고 쓴 것 같다”고 돌아봤다. 실제로, ‘연수’에서 장류진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를 입으로 내뱉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는 등 몸짓과 표정을 직접 연기해보며 쓰기도 했다’고 적었다.
10년 후에도 여전히 ‘쓰는 사람’
이번 신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에필로그에는 재밌는 대목이 있다. 핀란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연수’ 북토크를 가졌다는 작가는 ‘10년 뒤에 자신이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잠시 망설인다.
‘10년 후에 저는 소설을 쓰지 않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대답을 하려던 작가는 ‘출판계의 체조경기장’으로 불리는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을 가득 채운 독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10년 뒤에도 부디 계속 쓰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쓰고 싶은 마음, 사실 그게 원래의 내 마음’이라고 마음 속으로 읊조린다.
장류진 작가는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는 것도 있었다”면서 “내가 잘 하는 걸 했을 때, 그 일의 결과물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내 결과물을 원할 때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독자들의 바람과도 일치할 것이다.
이번 신작 에세이에 대해 “제 소설을 계속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좋아해주실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인 장류진 작가는 “선물 같이 썼고, 소설처럼 썼다”고 표현했다. “소설인 것과 소설이 아닌 것을 나누기보다, 하나의 완성된 긴 이야기로서 이 묵직한 글을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장류진 작가는 책에 등장하는 친구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내 존재 자체로 좋아해준다는 것. 이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정도 사랑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