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정기주주총회에 맞춰 행동주의펀드 및 소액주주들의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만 기업 성장력 저해와 경영권에 악영향을 주는 무리한 제안도 있어 재계는 반발하는 상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찾아오면서 행동주의 주주제안 활동이 다수 등장했다. 구체적으로 코웨이, 밀리의서재, KT&G, 영풍, 이마트, DI동일, 한국단자공업, 롯데쇼핑 등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와 금융당국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공개된 지난해 연말 기준 100여개 기업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진행했다. 밸류업 공시에는 향후 사업 방향성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 주주환원 확대 계획 등을 담고 있어 행동주의 펀드가 밸류업을 발표한 기업에 대해 내용 보완이나 실행을 촉구하는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자업계에서는 올해가 행동주의펀드의 활동이 확대되는 분기점으로 평가한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상법 개정 추진 가능성이 높아진 점에서 국내 주주행동주의 확산을 기대하게 한다”며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의 원년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소액주주들의 주주제안도 활발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주주행동주의 확대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120개사가 최근 1년간 주주들로부터 관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 중 90.9%는 주주관여의 주체가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라고 답했다. 대한상의는 “최근 온라인 플랫폼 발달 및 밸류업 정책과 맞물리며 소액주주로 주도권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 인증기반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는 개인주주의 주주권 강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국내 20대 주요 기업 대상으로 주주서한 캠페인을 진행할 방침이다.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네이버, 카카오, 기아, LG전자, POSCO홀딩스, 셀트리온, SK, KT&G, LG화학, 두산에너빌리티, 삼성SDI, 삼성물산, 현대모비스, SK이노베이션, 한국전력, HMM 등 대한민국 상위 20개 기업이다.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연대 주주서한의 공통점은 집중투표제 도입이 꼽힌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면 집중투표제 도입 시 1주를 보유한 주주는 5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총 5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액주주도 이사 선임 과정에서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진다. 이외에도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사외이사 선입, 정관 변경 등이 대표적인 주주관여 내용이다.
문제는 주주제안 과정에서 기업가치에 타격을 주는 무리한 요구가 빗발친다는 점이다. 일례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1월16일 코웨이 이사회 대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공개 캠페인을 실시했다.
당시 얼라인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의 변경과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안을 비롯해 당기순이익의 90%에 달하는 주주환원율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코웨이가 밸류업 방안 발표에서 주주환원율을 기존 20%에서 40%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두 배 이상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얼라인은 최종 주주제안에서 주주환원율 상향 요구를 철회했다.
재계도 이같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조사한 결과 상장기업들은 지나친 경영 간섭에 따른 이사와 주주 간 갈등 증가를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짚었다. 아울러 단기 이익 추구로 대규모 투자 및 연구개발(R&D) 추진 차질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같은 리스크가 더욱 증폭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상법 개정안 주요 안건을 살펴보면 △이사 충실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권고적 주주제안 허용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 있다. 이를 근거로 행동주의펀드가 상법 개정안의 주주충실의무 조항을 명분삼아 기업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단기 이익을 중시한 주주요구가 경영권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될 경우, 경영진의 중장기적 관점의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고 기업 의사 결정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이유”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