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제적’ 카드에 의대생들 고심…의협엔 “뒷짐만” 반감

대학 ‘제적’ 카드에 의대생들 고심…의협엔 “뒷짐만” 반감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복귀 시한 설정
일부 의대생 ‘수업 방해’ 지속…“학칙 따라 중징계”
대학·정부 압박에 의대생 ‘단일대오’ 흔들
“의협, 지나친 몽니…구체적 대안 내놔야”

기사승인 2025-03-13 06:00:08
서울의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이달 말까지 의과 대학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로 되돌리겠다고 밝히면서 대학들이 학생 복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상위 대학들은 기한 내 복귀하지 않는 학생을 제적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일부 학생들의 복학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대 정원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됐으니 학생들이 되돌아오도록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상당수 의대가 학장 명의의 서신을 통해 학생들의 복귀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의대는 복귀하지 않을 경우 학칙에 따라 제적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대로 복귀하지 않으면 24·25·26학번이 동시에 같은 학년 교육을 받는 ‘트리플링’이 발생해 의대 교육이 무너지고 의사를 제대로 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적 경고 신호탄을 쏜 건 연세의대다. 최재영 연세의대 학장은 최근 지도교수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달 24일 이후 학생들의 추가 복귀 일정은 없다”며 “학생들과 마주해 복귀할 수 있게 최대한 설득하고, 복귀 의사가 없는 학생은 등록 후 휴학을 하도록 권유해 달라”고 안내했다. 이어 등록을 한 뒤 휴학을 신청하는 경우 유급 처리되지만, 등록하지 않고 휴학을 신청하면 제적 처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미등록 휴학 신청자에게는 오는 24일 제적 예정 통보서를 발송할 방침이다. 연세의대는 직전 영업일인 21일을 기준으로 통보서를 발송하기로 했다. 연세대 학칙에는 ‘소정 기한 내에 등록하지 아니한 자에 대해 총장이 제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앞서 최 학장은 지난 7일 ‘학생, 교수님, 학부모님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학생들의 복귀를 호소한 바 있다. 최 학장은 “24일에 시작하는 특별교육 일정을 편성했다”고 했다. 24학번과 25학번의 분리 교육에 대해선 “예과 과정은 성적을 분리 처리하고, 향후 분리 교육은 교육부가 제시한 4가지 안을 아울러 전향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2024년에 입학한 의대생을 대상으로 의사 국가시험과 전문의 자격시험을 2030년에 추가 실시하기로 했다. 24학번과 25학번 7500여명이 동시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른바 ‘더블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운영 모델과 의대 교육 정상화 방안도 제시한 상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대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 회장단의 양오봉 전북대 총장, 이해우 동아대 총장 그리고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과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 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도 11일 의대 교수들에게 서한을 보내고 “학생들이 오는 27일까지 휴학을 철회하고 복학원을 제출해 수업에 복귀해야 한다”면서 복학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학칙에 따라 제적 또는 유급 처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집단행동 휴학 불가 △학사 유연화 불가 △원칙적 학사 관리 등의 원칙을 들어 “작년과 달리 올해는 휴학 승인이 절대 불가하다”고 못박았다. 다만 학교로 돌아오면 수업 진행, 성적 처리, 경력 관리에 있어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또 수업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는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학장은 “수업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더라도 일부 선배들의 휴학계 인증 릴레이, 복귀자 블랙리스트 유포, 향후 불이익 예고 등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주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라며 “수업 방해, 집단 따돌림 및 괴롭힘 행위에 대해선 학칙에 따라 중징계를 할 것이며, 복귀하는 학생을 철저히 보호할 것이다. 만약 고초를 겪는 학생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신고·보호 체계를 마련해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적 부여, 전공의 선발 등 모든 권한은 오직 교수에게 있다”며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은 학교 생활과 병원 수련에서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합의했고, 대학의 주임교수와 병원의 진료과장회를 통해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가톨릭의대는 오는 24일을 복귀 시한으로 정했고, 순천향대·전남대·가톨릭관동대 등 다수 의대 학장들이 일제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한을 보내 복귀를 촉구했다. 각 대학이 의대생 복귀 시한을 이달 말로 정한 것은 학칙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대는 학칙에 따라 출석 일수의 4분의 1 이상 수업을 듣지 않으면 F 학점 처리 및 유급이 이어진다. 출석 일수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시한이 바로 이달 말로, ‘복귀 디데이’가 3주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편성범 고려의대 학장은 서한에서 “졸업 후 의사시험, 전공의 정원 확대에 대해 정부와 상당 부분 협의한 상태”라며 최종 등록 마감일을 21일로 설정했다. 편 학장은 “기한을 넘길 경우 학생들은 학칙에 따라 미등록 제적과 같은 심각한 불이익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짚었다.

정부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입대, 임신·육아, 질병 등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한 모든 학생이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사실상 의대 증원 정책을 철회한 만큼 의대생들도 복귀로 화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제는 반드시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며 “지난해처럼 학사 유연화 등의 조치는 없다”고 압박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전경. 박효상 기자

정부와 대학 모두 복귀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의대생들의 ‘단일대오’에도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수도권 의대의 A학생은 “지난해에 비해 분위기가 달라졌다. 1년 더 휴학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크다”고 했다. B의대생도 “휴학을 또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지 모르겠다”며 “힘들게 공부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다른 의대의 C학생은 “의협은 의대생·전공의를 앞세운 채 뒷짐만 지고 있다”면서 “우리만 피해를 입게 생겼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7일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발표 후 낸 입장문에서 “제시된 내용으로는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기 어렵다”고 평가절하했다. 급기야 의협 내부에선 ‘24·25학번을 동시에 교육하기 위해 2026학년도 신입생은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협이 지나친 몽니를 부린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대학병원장을 지낸 D교수는 “의협이 구체적 대안을 내놔야 하는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D교수는 “환자들을 생각하고 젊은 의사들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빠른 합의와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의협은 전공의·의대생 복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면서 “(임현택 전 회장 탄핵 후)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포용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일갈했다. 이어 “의협이 해야 할 역할은 명확하고 간단하다. 의대생 복귀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의협은 의료계 안에서도 존재 의의를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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