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은 겸손하면 좋으련만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은 오만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내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면서 조건으로 제시한 의대생 복귀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4명이 병원과 교실을 떠난 전공의 및 의대생들에게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소속 하은진 신경외과·오주환 국제보건정책·한세원 혈액종양내과·강희경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7일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의대생을 향해 “현재의 투쟁 방식에 계속 동조할 것인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것인지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더 이상 침묵하는 다수에 숨어 동조자가 될 수 없다. 진짜 피해자는 지난 1년 동안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라며 “여러분은 2000명 의대 정원 증가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오류를 지적하며 용기와 현명함을 보였지만,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다”라고 짚었다.
이어 “상대가 밉다고 해서 우리의 터전을 파괴할 것이냐”라며 전공의·의대생이 이제 의료 현장과 배움의 장으로 돌아올 때라고 했다. 이들은 “의사 면허는 사회가 독점적 의료 행위를 할 권한을 부여한 것인 만큼 희소성을 인정받고,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면서 “사회가 의료 분야에서 독점적 구조를 용인하면서도 그 부작용을 감수하는 이유는 면허 이면에 공공성을 요구하는 책임을 다해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을 지속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집단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면 사회는 결국 그 독점적 권한을 필연적으로 다른 직역에게 위임할 것”이라며 “정부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의료계도 똑같이 굴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의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환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전문가 정신을 떠올리라고도 했다. 이들은 “지금 우리는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남수단·시리아 내전 같은 상대에 대한 증오로 인한 극단적 대립은 그 나라를 파괴했고, 결국 모두가 무너졌다. 그런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박단 대한의사협회 부회장(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페이스북 글과 의사 전용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올라오는 글들에 대해선 “환자에 대한 책임, 동료에 대한 존중, 전문가로서의 품격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친다”고 했다. 이들은 “정말 내가 알던 제자, 후배들이 맞는가. 이들 중 우리의 제자, 후배가 있을까봐 두려움을 느낀다”라며 “그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아플 때, 또 내 가족이 아플 때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봐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걱정하며 이제는 전공의·의대생이 결단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와 달리 책무를 다하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개혁을 이끌 것인지, 사회와 의료 환경을 개선하면서 우리의 근로 환경 역시 지속 가능하게 바꿔갈 것인지, 이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도와가며 주도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계속 훼방꾼으로 낙인 찍혀 독점권을 잃고 도태될 것인지 이젠 결정해야 할 때다”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