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이하 환수위)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사였던 김시철 사법연수원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환수위는 지난 21일 김시철 원장을 직권남용 및 청탁판결 등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26일 밝혔다. 환수위는 “김시철 원장이 판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직권을 남용해 군사정권의 비자금 조성 범죄를 사실상 비호한 것”이라며 “공수처가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수위 측은 김 원장이 노 관장과 가족처럼 가까운 ‘특별 관계’임에도 숨긴 채 재판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또 김 원장에 대해 “노태우 비자금은 노 관장의 돈이라는 반역사적 판단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판사는 특별관계 등으로 인해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사건을 기피 또는 회피해야 한다”며 “증거능력이 없는 ‘김옥숙 메모’를 근거로 노 관장의 손을 들어줬기에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환수위가 제출한 고발장을 보면 노 관장은 이혼 1심에서 패소하자 2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남긴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증거로 내놨고 김 원장은 이를 근거로 승소판결을 냈다. 해당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 최 서방 32억원’ 등이 적혀 있었고 최 회장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 자금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포함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금은 노 관장의 몫으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환수위는 “이른바 ‘김옥숙 메모’에 적힌 자금이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인줄 알면서도 이를 노 관장의 재산으로 인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라며 반발했다. 환수위 측은 김 원장이 노 관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집안 간 밀접한 관계였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의 부친인 김동환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경북고 1년 후배로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 국가정책자문위원과 선관위원, 언론중재위원, KBS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또 김 변호사는 1995년 보수성향 월간 시사잡지에 “5·18특별법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입법을 반대하는 글을 기고했다.
환수위는 “김 원장에게 사건이 배당된 과정도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사건은 지난해 1월 서울고법 가사3-1부(조영철 부장판사)에 배당됐으나 노소영 측은 지난해 2월 15일 조 부장판사의 매부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재판부에 기피신청이 제기됐다. 이에 서울고법은 사건을 김 원장이 재직 중이던 가사2부로 사건을 재배당했다. 이후 해당 변호사는 다른 법무법인으로 옮겨 노 관장 사건을 계속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수위는 ”김 원장은 해당 사건이 자신에게 배당되자 이를 기피 또는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사건을 받아 재판을 진행했기에 법조 비리 정황“이라고 말했다. 또 김 원장의 형인 김시범 안동대 교수와 노 관장은 국제미래학회에서 각각 미래전통위원장과 미래예술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함께 찍은 사진도 미래학회 홈페이지 등에 공개돼 있다고 전했다.
또 환수위는 이상원 변호사와의 관계도 주목했다. 이 변호사는 노 관장 관련 소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물로 노태우 정권의 실세로 불렸던 박철언 전 장관의 사위다. 박 전 장관은 김동환 변호사와는 경북고, 서울대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의 딸이자 이 변호사의 아내인 박지영씨는 노 관장이 설립한 봉사 단체인 ‘미래회의’의 현 회장이다.
환수위 측이 주장한 ‘특별 관계’로 보임에도 김 원장은 지난해 5월 노 관장 측이 증거로 제출한 ‘김옥숙 메모’를 근거로 최태원 회장에게 1조3808억원을 재산 분할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1심 판결금액(665억원)보다 20배 늘어난 규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 원장이 재판과 관련해 노 관장으로부터 모종의 청탁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원장은 지난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7부장판사로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조작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으며 무죄 판결문을 미리 작성해 논란이 됐다. 김 원장은 검사와 변호사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까지 준비한 사실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서 확인됐다.
또 당시 주심을 맡은 배석판사와 갈등이 일자 다른 배석판사와 재판을 진행했다. 김 원장은 2015년 10월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석방한 후 2017년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해당 사건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이후 후임 재판장이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환수위는 “김 원장의 재판 행태를 볼 때 이번 이혼 소송에서도 자신의 직권을 남용한 판결로 볼 수밖에 없다”며 “과거 대법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내란죄와 뇌물죄 등의 책임을 물어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비자금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인정한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판결이란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과거 공직자들의 비자금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라며 “이번 판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역행하는 중대한 사법 오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수위는 “사법부 내 판사들의 직권남용과 주관적 판결은 마땅히 처벌할 시스템이 없다”며 “공수처 조사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공수처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환수위는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김시철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며 “김 판사는 이혼 소송을 통해 노태우 비자금 회수를 도운 셈”이라고 주장했다.